big + 코펜하겐 (1)

2021.03 | copenhagen

20년 동안 인생에서 건축과는 아무 관련 없는 삶을 살다가, 대학교와서 건축을 처음 접하기 시작한 지가 어느덧 벌써 10년 가까이 지났다. 이것저것 많이 주워듣고 또 많은 것들을 해본 지금에 와서는 참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건축을 처음 접하던 대학교 신입생 때의 그 즈음에, big는 정말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학부 1학년 때 전공도 아닌 영어 교양 수업에서 과제로 읽어야 했던 책 중 하나가 yes is more 였던 것도 기억난다. 물론 다른 많은 설계 교수님들도 여기저기서 레퍼런스로 big를 언급하던 시대였으니까, 정말 그 당시 최고 유행하던 건축이긴 했나보다.

사실 그 때 이후로 big는 학부 때는 몇몇 프로젝트 빼고는 크게 관심도 없었고 거기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던 회사였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원래 인턴하러 가기로 했던 일본이 국경을 닫으면서, 급하게 다른 대안을 알아보다가 예정에 없던 덴마크로 떠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또 인턴 하기는 너무 싫었고 미국은 휴학하면서 취업 비자가 사라져버려서 선택지가 유럽 밖에 없긴 했다. 회사 지원을 한 30개는 넘게 한 것 같은데, 워낙 시기가 시기다보니 사람을 새로 뽑는 회사 자체가 많이 없기도 했다. 일한 경력도 졸업한 학교도 다 한국 밖에 없어서 해외에서 첫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기도 했고... 그래도 big는 포트폴리오만 보고 뽑는 느낌이라, 인터뷰도 매우 대충 보는둥 마는둥하고 오퍼 메일이 금방 와서 다행히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직항도 없는 코펜하겐에 꼬박 하루가 걸려서 힘들게 도착하고 처음 느낀 건, 분위기가 참 외국 같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여러 나라를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다면 돌아다녔었지만 북유럽은 처음이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유럽 관광 도시들 같지 않은 깨끗한 거리와 대중 교통, 매우 바이킹 후손처럼 생긴 사람들, 그리고 이케아에서 봤던 것 같은 처음 보는 문자들까지 모든게 새로웠다. 물론 이젠 스웨덴어랑 덴마크어 글자는 구분할 줄 알지만... 여행 온 것처럼 도시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것도 잠시였고, 첫 출근까지 시간이 얼마 없었어서 새로 이사간 집과 동네에 적응하기도 전에 바로 폰을 개통하고 계좌를 만들었다. 언어라도 통하는 미국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긴 했지만 그래도 타지에서 한번 해봐서 그런지 어찌어찌 문제 없이 잘 해결되었다. 

내가 처음 지내게 된 곳은 남쪽의 Ørestad라는 지역이었는데, 약간 코펜하겐 내에서 새로 개발된 계획 신도시 같은 곳이라 최근에 지어진 주거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는 꽤나 생소한, 모든 유닛들이 테라스를 가진 6,7층 언저리의 공동주택 유형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코펜하겐이 유독 이국적으로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또 이런 테라스 건물 유형들이 제각각 다 다른 재료와 마감, 형태를 띄고 모여있어서 도시의 건축 수준이 전체적으로 참 높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Ørestad는 big의 mountain, vm house, 8house같이 인터넷으로만 보던 유명한 주거 프로젝트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라, 매일 동네를 걸으면서 좀 신기하기도 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vm house

코펜하겐은 도시 전체에 물이 퍼져있는, 정말 수변친화적인 도시이다. 도시 3면이 바다에 둘러 쌓여 있어 워낙 물에 대한 접근성이 좋기도 하지만, 도시 곳곳에 하천과 운하가 흐르고 또 건물과 맞닿아 있다. 사실 북유럽 기후가 그렇게 야외 활동 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님에도 작게작게 공원이나 오픈스페이스가 참 많고 또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참 좋아보였다. 물론 넓은 공공 공간에 비해 도시의 인구밀도가 상당히 낮고, 짧은 여름 시즌 이외엔 사람들이 그리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보이진 않아서 겉보기에만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공원과 waterfront를 따라 자전거 도로가 정말 잘 조성되어 있어서, 빨리가도 40분은 걸리는 출퇴근 거리를 그 추운날씨에 매일 자전거로 다녀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역시 태생이 한국인이라 그런지 군기 바짝든 육군병장만기전역자의 마인드로, 그리고 절대 첫인상을 망치면 안되겠다는 신입사원의 마인드로, 첫 출근 전에 집에서 회사까지 출근 시뮬레이션을 자전거로 두번이나 해보고 나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 사실 편해진 건 아니었고 거의 설렘1 걱정9 의 마음가짐으로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출근 첫날, 웅장하게 깃발이 휘날리는 공장건물 같은 오피스에 처음 들어가고 느꼈던, 설레면서 신나는 감정은 아직도 참 생생하다. 여름 휴가기간에 코로나까지 겹쳐서 오피스에 사람도 얼마 없었지만,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높은 층고와 big의 시그니처 조명, 그리고 여기저기 넘쳐나는 큰 모델들까지, 유튜브에서나 보던 외국 디자인 회사의 playful한 바이브 그 자체였다. 그저 들뜬 상태로 같이 시작하는 친구들과 다같이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정신 없이 맛없는 danish 도시락을 먹고나서야 컴퓨터와 함께 1층 한가운데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첫 프로젝트는 중국 항저우에 있는 괴물같은 못생긴 오피스 건물이었지만, 신입사원 답게 디자인이 정말 너무 멋지고 나도 빨리 시작하고 싶다고 포부를 당차게 밝혔다. 아쉽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담당 사수가 휴가 중이라 해야할 일이 딱히 없었어서, 정말 복지 좋은 북유럽 국가의 휘게 라이프를 맘껏 즐기면서 첫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일주일 후에 지옥같은 고생길이 시작되었다…

big cph

딱 일주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회사를 가니까 휴가에서 돌아온 사수가, 환영하고 만나서 반갑지만 오늘부터 너는 팀을 옮기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새로운 사람이 와서 앞으로 자기랑 부다페스트의 마스터플랜팀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자리를 2층으로 옮기라고 알려주었다. 사실 예전부터 타워보다는 마스터플랜을 훨씬 하고 싶었어서, 그리고 괴물 같은 중국 프로젝트는 하기 싫었어서 신나는 마음으로 새로운 팀을 만났다. 전체가 한 열명 정도 되는 꽤나 큰 팀이었는데, 처음 만난 그 날 다들 표정이 상당히 어두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무섭게 생긴 사람이 라이노 쓸 줄 아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했다. 그러더니 바로 스케치와 레퍼런스 이미지 몇개를 던져주고 만들라고 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본능적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서 바로 라이노를 키고 열심히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시간이 지나자 그 무서운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자기가 아까 한 말을 이해한거냐고 물어보았다. 그 이후에 며칠 동안은 정말이지… 일주일동안 아무도 관리 안하는 꿀보직의 삶을 살다가 훈련소로 돌아온 기분이랄까… 그 무서운 사람은 사실 팀장 줄리아였고, 알고보니 나 뿐만 아니라 팀원 모두, 아니 거의 회사 전체에 무섭다고 소문난 사람이었다.

나중에서야 들은 사실이지만 원래 팀에 중국인 인턴이 있었는데, 영어와 라이노 실력에 답답함을 느낀 팀장 줄리아가 hr에 바로 찾아가서 인턴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 새로 들어온 인턴으로 팀원을 교체 했는데 새로 들어온게 나였으니… 지금 와서 줄리아의 성격을 알고나니 그 때 얼마나 답답했을지 이해가 가긴 간다. 보통 시니어 레벨이 되면 내러티브와 프레젠테이션 정도만 자기가 직접하고 나머지는 아래 사람들에게 맡겨 두는게 일반적이지만, 줄리아는 그래픽 하나하나까지 모든 걸 자기가 통제하고 관리해야 마음이 편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팀 내에서 일을 매우 효율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능력에 맞게 분배하긴 하지만 민주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먼 독재적인 다혈질 리더이긴 했다. 또 뉴욕 big에서 덴마크 본사로 옮긴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북유럽의 라이프스타일과는 동떨어진 빡센 뉴욕의 업무 환경을 코펜하겐으로 같이 가져와서 팀 여기저기서 불만도 많았다.

team budapest

하지만 오히려 줄리아의 그런 성격 덕분에 난 인턴임에도 둘이서 가깝게 일할 기회가 많았고, 그래서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이 배웠다. 줄리아는 대학원까지 밀라노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일은 west8에서 한 경험 때문인지 건축과 랜드스케잎 두 분야 모두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높았다. 사실 많은 건축가들이 랜드스케잎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얕잡아보지만 마스터플랜이나 urban scale에서는 랜드스케잎의 역할이 건축 그 이상으로 중요한데, 줄리아는 urban design을 어떻게 접근해야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디자인은 그닥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도시부터 건축까지 크고 작은 여러 스케일을 다루는 감각이 좋아서 배울 점이 참 많았다. 또 예전이나 지금이나 BIG 프로젝트 중에 가장 좋아하는걸 뽑으라면 항상 toyota woven city를 고르는데, 마침 줄리아가 뉴욕에서 그 프로젝트 팀장이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참 큰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4개월 가까이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채찍을 맞아가면서 덴마크에서의 첫 submission을 끝냈다. 밤늦게가 되어서야 마감을 하고, 회사에서 팀끼리 축하 파티를 하면서 줄리아랑 짧게 둘이 얘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나한테 앞으로 회사에 좋은 마스터플랜 프로젝트가 많은데 자기가 책임지고 팀에 데리고 다닐테니 6개월 더 인턴으로 있는게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원래 6개월 이상 덴마크에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줄리아랑 같이 일할 수 있다면 여기서 좀 더 오래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같이 일하면서 언제나 줄리아는 롤모델 같은 사람이었고 옆에서 항상 팬의 마음으로 있었어서, 나한테 그런말을 해줬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고마웠고 들뜨는 일이었다. 웃으며 고맙다고 하고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대충 둘러대니까,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만약 다른 회사로가면 날 죽이겠다고 했다… 결국 나중에 네덜란드로 가게 되었다고 말했을 땐, 날 환하게 안아주면서 ‘로테르담은 너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줄 도시가 될꺼야’ 라고 따뜻한 말을 해줘서 다시 한번 더 감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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