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geometry에 대한 믿음이 강한 big 이지만, 이런 조형에 대한 집착이 역으로 회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한으로 창의적인 형태를 계속해서 생산하기엔 역시 한계가 있으니, 그동안 자기들이 해왔던 것들에서 자기복제를 반복하고 있는듯한 느낌이랄까? 그러다보니 사이트나 프로젝트 성격에 상관없이 그냥 일단 익숙한 geometry를 때려박고 시작해서, 결국 어정쩡한 자기복제 프로젝트로 끝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았다. 팀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던 이야기 중 하나가, 픽셀 컨셉은 회사에도 하도 많이 해서 앞으로 픽셀을 또 하면 벌금을 내야 된다는 것이 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 프로젝트는 다이아몬드 픽셀이니까 괜찮을 꺼라고 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픽셀 같은 파라메트릭이 이젠 big의 대표 디자인 스타일이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아예 오래 일하기엔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약간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은 big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도 궁금하다.
비야케를 건축계의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ted 강연이나 yes is more 만화책처럼, 클라이언트와 대중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전달시키는 힘은, 어쩌면 디자인보다도 big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과 기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작년 ces에서 보여준 비야케의 toyota woven city 프레젠테이션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사실 회사에서도 시니어들의 스토리텔링이나, 프레젠테이션 네러티브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가끔 정말 놀랍고 감탄스럽기까지했다. 물론 그 내러티브의 반 이상은 듣기에만 그럴듯한 허울뿐인 말들이지만, 내가 클라이언트라도 혹해서 그대로 지을 것만 같이 설득력이 있었다. 왜 사람들이 big를 장사꾼이라고 욕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다만 비야케는 그렇게 대단한 세계적인 명성 만큼, 그리고 회사 오기전에 기대했던 것 만큼 프레젠테이션을 잘하진 못했다. 계약서 상으로도 그렇고, 클라이언트가 비야케가 직접 미팅에 얼굴을 비추고 발표하길 원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다 클라이언트한테 미안할 정도로 엉망인 경우도 많았다. 사실 비야케는 이제 워낙 바쁘다보니 프로젝트가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른 상태로 미팅에 들어가서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것 같긴 했다. 그래도 다른 파트너들이나 시니어들이 말을 워낙 잘해서, 이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큰 배움이 되었고 나의 귀중한 자산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