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urbanism (1): 박원순
2025.06 | new york
서울의 공공 건축 프로젝트들은 예전부터 늘 세간의 큰 주목을 이끌어 왔다. 건축계 내부에서도 그랬다. 청계천, 광화문광장, 서울시청처럼 좋은건축인지 나쁜건축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 프로젝트들도 항상 있어왔다. 워낙에 정치적인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프로젝트들이 많기도 했고, 시장의 정치적 성향이 그대로 공공 건축과 도시 공간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어서 더욱 더 논란의 중심이 되곤 했다. 가장 최근 두 명의 서울시장인 박원순과 오세훈의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지난 20년 가까이 서울시를 이끌어 온 박원순과 오세훈은, 모두 공공 건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자신들의 신념을 서울의 건축 및 도시 정책에 투영시키고자 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은 건축과 도시에 대해 정반대의 철학을 가지고 서울을 디자인 해왔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서울시장이 오세훈-박원순-오세훈으로 다시 이어지면서 이들이 어떻게 서로가 만들어 놓은 제도를 부정하고 재해석해오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 또한 상당히 흥미롭다. 아마도 두 사람 모두 전임시장에 대한 흔적 지우기를 어느정도 신경쓰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둘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서로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자신이 바라는 서울의 밑그림을 그려왔다고 할 수 있다.
시민 중심,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2011년에 처음 시장에 당선된 박원순은, 역대 서울시장 최장 재임 기간인 9년동안 수많은 건축, 도시 관련 정책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중 많은 부분들은 서울의 공공 건축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시의 여러가지 공공 건축 관련 제도들은, 대부분 박원순이 시장으로 있던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서울시 총괄/공공 건축가’나 ‘프로젝트 서울’과 같은 서울시의 대표적인 공공 건축 제도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 역시 박원순 1기 시절인 2013년이었다.
박원순은 임기 초기부터 서울의 공공 건축과 도시 공간들에 대한 큰 관심을 드러냈다. 이명박의 청계천, 오세훈의 광화문 광장과 ddp, 세빛섬 등 공공 건축 프로젝트들이 가지는 사회적, 정치적 힘을 직접 경험하고 느꼈을 것이고, 마침 이 시기는 대중들의 건축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한편 디자인 서울이나 한강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오세훈의 대규모 개발 정책들과 달리, 박원순은 도시의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소규모 중심의 생활 밀착형 디자인, 건축 정책을 펼친다.
박원순 서울의 공공 건축 제도
나는 박원순이라는 정치인, 그리고 그의 인성과 위선은 너무나도 싫어하지만, 그가 시장으로서 제시했던 서울의 건축과 도시계획에 대한 비전과 철학은 상당히 큰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 비전이 옳은 방향이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 때 만들어진 정책들이 결과적으로 서울시를 위한 성공적인 정책이었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시 서울시가 적어도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도시를 계획하고 디자인하고자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박원순의 비전과 건축 정책들은 굉장히 아카데믹하고 트렌디했으며, 뚜렷하고 일관된 목표와 철학, 그리고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서울시가 왜, 그리고 어떤 가치를 위해 그런 공공 프로젝트들을 추진했는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솔직히 나 같아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내가 건축학과에 입학한 2011년은 오세훈이 별안간 시장직에서 사퇴하면서 박원순이 서울시장에 처음 당선된 해였다. 그러고는 결국 졸업할 때 까지 8년 내내 서울시장이 계속 박원순이었다. 나름 건축 전공생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울시의 공공 건축 프로젝트들과 정책들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다가, 학부 때 스튜디오들의 모든 사이트가 서울이었어서 당시 서울시의 도시 계획과 공공 프로젝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연구할 기회가 많았다. 그렇게 박원순이 만들어가는 서울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면서, 서울시가 발표하는 건축, 도시 정책들은 나의 주된 영감이자 무대가 되기도 했다. 개인 프로젝트들 중에 박원순의 정책들에서 시작한 작업들도 있었으니, 좋든 싫든 나의 건축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지금은 나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학부생 때 내가 하고 싶었던 건축은 당시 서울시가 내놓았던 건축 정책들과 굉장히 그 방향이 유사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주로 다뤘던 주제나 argument들 역시 당시 서울시의 비전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내 학부 졸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박원순표 서울의 건축 정책 혹은 2030서울플랜의 30페이지 요약본이라고 봐도 전혀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학부 때 열리던 많은 건축 공모전들도 그런 사회적 가치들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었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정답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비슷한 주제의 공모전이 있다면 바로 내러티브에 좋은 말 이것저것 다 가져다 붙여서 이길 자신도 있고, 학교에 비슷한 주제의 스튜디오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안까이고 a+ 받을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어쩌다 내 스타일이 그렇게 된 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한창 건축에 대해 관심과 열정이 많던 학부 시절에, 내가 사는 도시가 나아가고 있던 방향을 정답처럼 생각하고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게 나의 스타일의 일부가 되어버린걸까? 아니면 당시 전세계적으로 광풍처럼 유행하기도 했던 그런 사회적인 건축이, 남들한테 욕 먹을 위험이 가장 덜한 정답과 같은 건축이니까 나도 모르게 제일 안전한 방법을 택해버린걸까…?)
2015 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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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바 ‘서울건축선언’을 공표하면서, “건설의 시대에서 건축의 시대로-!”라는, 지금 들어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리는 슬로건을 제시한다. 총 10가지 비전으로 구성된 이 조문은 공공성, 지속성, 시민, 역사 등등, 듣기에는 꽤나 좋아보이고 반박하기 어려운 공공적 가치들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수 십년간 그래 왔던 것처럼 서울에 더 이상 새로운 걸 짓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앞으로의 서울은 새로운 개발과 건설로 성장하는 도시가 아니다. 이제는 이미 있는 걸 보존하고 고쳐쓰면서 —양적 팽창보다는 내적 성장을 이뤄내야 하는— paradigm shift가 왔다-!
정치적 색깔을 떠나서, 10년도 더 지난 지금 다시 보아도 참 그럴듯하게 들리는 비전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뭐 사실 아직까지도 건축계에서 가장 메인스트림인 주제들이고 애초에 틀릴 수 없는 근본적인 가치들이긴하니까… 당장 지금 유명한 전세계의 건축 학교들에 찾아가봐도 여전히 거의 정답처럼 여겨지는 가치들이기도 하다. 특히나 이 시기는 전세계적으로도 사회를 위하는 ‘착한 건축’이 건축계에 워낙 큰 유행처럼 막 휘몰아치기 시작한 시기여서, 세계적 추세에서 보아도 꽤나 알맞은 정책이기도 했다. 시게루 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프리츠커를 수상하며 사회적 건축이 유행이자 정답인 방향처럼 건축계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고, 자하 하디드나 프랭크 게리같은 건축가들은 한물 간 유행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지면서, 서울시 건축 정책의 기조는 과거 오세훈 시절과 같은 개발 위주 사업이 아닌 착한 건축으로 그 방향을 완전히 틀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박원순은 여러가지 새로운 건축, 도시 관련 정책들과 공공 프로젝트들을 연이어 발표하게 되는데, 이는 이후 10년 가까이 지속된 박원순의 재임기간 동안 그가 원하는 서울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건축적 도구이자 기반이 되었다.
특히 이 시기 처음 등장한 여러 정책들 중에 대표적으로 총괄건축가 및 공공건축가 제도를 꼽을 수 있다. 서울시는 2011년 공공건축가 제도를 처음 도입하고 뒤이어 2014년 전국 지자체들 중에 최초로 시 총괄 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다. 총괄 건축가라는 직책은 건축, 도시 관련 정책을 전반적으로 총괄하고 한 사람의 시선으로 도시 계획을 일관성 있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 하에 신설되었다. 그리고 박원순은 건축가 승효상을 1대 서울시 총괄 건축가로 임명하며 부시장에 준하는 직위를 부여한다.
물론 처음 도입되는 제도이다보니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비록 유럽의 몇몇 도시들에 존재하는 총괄 건축가 제도를 벤치마킹했다고는 하지만, 특정 설계사무소 소장이자 건축가 개인 한 명의 생각과 비전이 도시 전체의 정책과 방향성을 결정한다는 점은 다소 위험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총괄 건축가 자체가 시장이 직접 임명하는 직위이다보니, 애초에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그랬듯) 결국 시장의 의도가 건축에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민간인이자 공직자인 이중적 신분은, 한국 건축, 건설 산업의 특성 상 그 자체로 로비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자리임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울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일관성 있는 건축, 도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그동안 앞만 보고 개발하는데만 급급했던 서울에 분명히 필요한 제도였다.
이후 박원순은 ‘서울도시공간개선단’이라는, 총괄건축가 및 공공건축가 제도를 전담, 운영하고 보조하는 부서까지 신설하여 민간전문가들에게 제도적으로 힘을 더 실어주기도 했다. 도시공간개선단은 서울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도시 내 여러가지 공공 디자인 사업, 설계 공모까지 기획하는 역할을 하는, 말그대로 ‘박원순표 서울’을 상징하는 서울시 건축, 도시 정책의 핵심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박원순은 이외에도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설립, 도시건축비엔날레 기획 등, 상당히 건축과 도시에 대해 진심인 듯한 공공 정책들을 연달아 발표하게 된다.
승효상/이로재의 한강 보행교 계획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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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과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인 승효상은, 곧바로 서울시 도시 계획의 밑그림을 완전히 새롭게 구상한다. 제도적인 명분과 권력의 칼을 손에 쥐게 된 건축가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서울의 정체성에 투영시키기 시작한다.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건축가의 철학답게, 전반적인 서울의 미래 비전 역시 연대와 회복 등의 사화적, 공공적 가치에 집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서울의 발전 방향은 랜드마크나 대규모 도시시설 건설과 같은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시설의 보존과 재생으로 완전히 그 변화하게 되었다.
이 때 등장한 대표적인 서울의 비전 중 하나가 바로 ‘보행도시’다. 박원순과 승효상은 서울을 교통이 아닌 사람 위주의 보행도시, 개발보다는 재생과 자연성 회복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도시, 도시의 역사성을 보존하는 역사도시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노후화 된 고가차도를 보행교로 바꾸는 서울로7017, 세운상가에 보행데크를 추가하며 리모델링하는 세운상가 활성화 프로젝트, 서울 성곽길 복원, 마포 문화비축기지 등이 모두 이러한 정책적 배경 속에서 등장했다. 이 프로젝트들을 모아놓고 보면 모두 일관되게 비슷한 가치를 목표로 기획 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서울을 걸어다닐 수 있는 보행도시로 만들기 위해 종로에서부터 남산, 서울역, 그리고 더 나아가 한강 이남의 관악산까지, 서울의 남북축을 서울로, 세운상가, 한강다리를 통해서 보행로로 모두 연결한다는 비전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특히 이로재에서 만든 다이어그램을 보면 훨씬 더 그 의도와 비전이 강렬하게 와닿는다.) 실제로 서울로와 세운상가 보행데크를 따라 용산에서 종로 쪽으로 걸어가다보면, 건축가가 상상했던 서울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를 좀 더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승효상/이로재가 제안한 서울의 남북 녹지축 연결
또한 박원순은 서울을 세계 제1 도시농업 수도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선포하며, 서울 한복판 땅 곳곳에 양봉시설, 텃밭을 만드는 등 여러 정책들을 추진한다. 서울시와 SH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에는 버섯 농장, 옥상 텃밭이 들어가기도 했다. 시대를 역행하는 터무니 없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사실 이렇게 도시의 주 기능과 농업을 합치려는 시도는 건축계에서는 상당히 흔하고 익숙한 접근이긴 하다. 당장 gsd같은 학교에서만 봐도 비슷한 제안들이 종종 등장했었고 전세계적으로도 유행처럼 관련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곤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꽤나 세계적 추세에 맞는 ‘트렌디’한 정책이긴했다. 공유 논밭을 통해 도시 내 주거 공동체가 활성화 되고, 입주민들이 수익을 창출해 경제성까지 챙길 수 있다는 내러티브는 솔직히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들리긴 한다.
서울시의 이러한 기조는 자연스레 도시 내 여러 건축 사업들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박원순은 역사성을 보존한다는 명분에 따라 도시 내 여러 건축물들과 동네들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여 개발을 억제하기도 했다. 기존의 대규모 재개발, 재건축 사업들은 모두 축소되거나 중단되었다. 일부 아파트 단지 재건축을 할 때는 낡은 아파트 한 동을 남겨서 보존하고 문화시설로 재활용해야만 하는 다소 생소한 정책도 등장했다.
특히 노후화된 서울의 여러 불량주거지들은, ‘도시재생’이라는 명목 하에 재개발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과거 서울의 도심정비사업처럼 구역 전체를 전면 철거하고 새로운 단지를 조성하는 방식은 사라졌다. 대신 낡은 골목길에 벽화를 그려넣고 동네 한 구석에 전망대, 박물관 같은 작은 공공시설을 만드는 도시재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박원순이 시장으로 있던 9년동안, 서울의 모습은 점차 그가 의도했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멀리서 봤을 때 확 드러나는 대규모의 물리적 변화는 없었지만, 도시의 소프트웨어는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변화하며 서울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가 꿈꿔온 그대로, 서울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크고 작은 보행로가 도시 곳곳에 조성되며 서울의 여러 부분들이 서로 연결되었다. 초고층 건물이나 랜드마크가 들어서는 대신, 오래된 건물들과 동네들, 골목길이 보존되었으며, 서울 여기저기에서 온갖 다양한 형태의 텃밭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를 social designer라고 칭했던 박원순이 상상했던 그대로 아니었을까? 아마도 박원순은 건축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아카데믹한 접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박원순이 내놓았던 건축, 도시 정책들은 건축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다소 나이브하고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서울시의 정책들에 일관된 철학과 신념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서울시의 이러한 비전은 당시 전세계 건축계의 흐름과도 정확히 일맥상통했다. 결과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적어도 그 비전의 밑바탕에는 근거 있는 소신과 철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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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정책들이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세계적인 도시의 반열에 오른 서울 한복판에 논밭을 조성하는게 과연 서울의 미래를 위한 최적의 선택일까? 말로만 국토균형발전, 지방도시 살리기를 외치고, 그러면서 서울에서 농산물을 생산한다고 하면, 그럼 진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야 하는 농촌은 어떡하라는 말인가. 차라리 텃밭이 들어갈 자리에 농촌에서 올라온 농작물을 쉽고 빠르게 유통할 수 있는 시장과 같은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 서울 시민들에게도, 농민들에게도 모두 도움이 되는 정책일 것이다.
서울시가 SH 임대 아파트에 조성한 버섯농장과 같은 도시농업시설은 결국 소량 재배의 한계, 안정적인 유통망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대부분이 폐쇄되고 말았다. 애당초 건물 한 층 정도의 규모에서 찔끔찔끔 수확하는 작물은 상품성과 수익성 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는게 당연했다. 누가 대형마트와 시장을 놔두고 일반 주민들이 아파트에서 생산한, 품질도 믿을 수 없는 농작물을 구매할까? 그러다보니 입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재배하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공동체를 회복한다는 낭만적인 초기의 상상과 달리, 도시 농장은 결국 경제성은 없고 운영비만 계속 지출하는, 입주민들에게도 외면 받는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무너져가는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면서 재생과 회복을 말하고, 달동네 체험을 한다며 옥탑방에서 에어컨 없이 생활하는 등의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은, 불량 주거지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전혀 되지 못했다. 애초에 문제의 본질인 노후된 건물과 걸어다니기조차 힘든 마을 인프라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당연히 실질적인 효과가 없을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창신동과 같은 박원순의 대표적인 도시 재생 사업 대상지는 결국 주민 인구 수 감소로 이어져 실패하고 말았다.
실제로 서울시의 도시재생 관련 예산 사용 내역을 보면 공사비 등의 실질적인 사업비보다 오히려 인건비에서 두 배 가까이에 달하는 지출이 발생했다는 황당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도시재생은 결국 실제 주민들이 혜택을 보지 못하고 외부 자문 업체, 벽화 그리기 업체와 같은 민간 단체들 배불리기로만 끝나버린, 허울 뿐인 예산 낭비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박원순 정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의 여러 도시재생센터들은 대부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폐지되고 말았다.
재개발 아파트 단지에 낡은 한 동을 의무적으로 보존하는 것 역시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비실용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럴바에 차라리 용적률을 더 높이고 타워를 한 동이라도 더 세워서 나오는 이익과 세금으로 공공에 녹지를 조성하고, 진짜 보존이 필요한 곳에 예산을 투입하는게 서울에 더 도움이 되는 정책이지 않을까?
박원순이 2018년에 발표한, 도심 내 공실이 발생하는 고층 오피스 빌딩의 일부를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한다는 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공공을 최우선으로 하는 매력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으로 들리지만, 서울시는 정작 이를 실현할 현실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애초에 업무 용도로 설계된 건물을 주거건물로 전환하는 일이 건축적으로도 쉽지 않을 뿐더러, 빌딩을 소유한 민간사업자에게 수익이나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 계획 역시 없었기에 결국 정책이 현실화 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현실성 없는 무책임한 도시 계획과 공공 건축에는 결국 그 대가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도시 전체를 개인의 주관적인 신념과 철학을 실험하는 무대로 삼을 수는 없다. 실제로 박원순과 승효상이 보행도시를 꿈꾸며 만든 세운상가 공중보행로의 실제 이용 보행량은 초기 계획 당시 예상치의 11%에 불과했고, 처음 기대했던 것 처럼 세운상가 일대의 도시재생과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당연히 기획 의도야 좋았겠지만, 결과만 보면 실속 없이 대규모 예산만 투입된 실패한 정책이 되고 말았다. 세금과 공공 예산이 아닌 민간 예산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이라면 치밀한 계획없이 이런식으로 사업과 정책을 구상하고 추진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시민을 위하고 역사를 보존한다는 명분이야 듣기에는 참 낭만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아무런 현실성이 없고 듣기에만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정책은, 결국 학생 수준의 나이브한 아마추어 정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예쁜 말만 늘어 놓고 예쁜 그림만 그리는 건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현실성 있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전문가이고 프로다. 그리고 도시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설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영역은 아마추어들의 무대가 아니다. 보존이라는 환상 때문에 개발을 배척하고 허울뿐인 가치들만을 추구하면, 결국 도시는 점점 경쟁력을 잃어갈 수 밖에 없다.
논밭이 되어버린 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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