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urbanism (2): 오세훈

2026.03 | new york

최근 서울 공공건축 무대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역시 세운상가 재개발을 둘러싼 논쟁이 아닐까 싶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위상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비판과 맞물리면서 건축계의 온갖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서울시장 오세훈 역시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고, 결국 기자회견에서 마치 건축사무소에서 발표하듯 직접 렌더링 스터디를 하나하나 보여주며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이미 10년 전 세운상가 마스터플랜 국제공모에 당선됐던 네덜란드 건축회사가 아직까지도 디자인과 계약이 계속 바뀌고 있다며 입장문까지 내는 걸 보면, 이런 일들이 마냥 나와 상관없는 머나먼 남의 일 같지도 않다.

한국에서 건축을 공부했다면 지겹도록 접했을 (그리고 5년 동안 한 번쯤은 그 사이트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해봤을) 세운상가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학부 시절과 달리 이제 조금 머리가 큰 상태에서 다시 바라보니 세운상가가 새롭게 다가오기는 한다. 학부 때는 그저 재미없고 지루한 사이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같은 사이트에 프로젝트를 한다면 꽤나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렇게 교수님들이 좋아하는 단골 주제였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세운상가는 예전부터 역대 서울시장들의 공통 관심사였다. 누가 권력을 잡든 한 번쯤은 꼭 건드릴 정도로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명박 역시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과 함께 세운상가 일대의 재개발을 추진했고, 오세훈은 첫 임기부터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하고 녹지축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실제로 여러 상가동 가운데 하나를 철거하기까지 했지만, 이후 수많은 반발과 현실적·경제적 제약에 부딪히면서 결국 한 동을 철거하는 데 그쳤다.

뒤이어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은 취임과 함께 오세훈의 개발 계획을 백지화하고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서울 곳곳에 펼치기 시작한다. 세운상가 역시 그런 도시재생 철학을 실험하기에 더없이 좋은 대상이었다. 오세훈이 철거한 상가 부지에는 고층 건물 대신 도시농장이 들어섰고, 남아 있던 낡은 상가 건물에는 공중보행로와 옥상정원이 덧대어졌다. 그렇게 보존과 소규모 개발을 내세운 박원순의 정책은 많은 건축가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반대로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대규모 개발을 추진했던 오세훈은 건축계에서 주로 악역으로 묘사되곤 했다.

물론 도시재생 자체가 당시의 시대적 흐름이자 패러다임이었던 만큼,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한쪽이 틀렸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오세훈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도시계획과 건축계의 패러다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임기 내내 일관되게 대규모 도시개발과 랜드마크 조성을 외쳐왔다.

서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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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는 내내 한결같이 랜드마크에 집착해왔다. 사실 ‘랜드마크’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세계의 다른 대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딱히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니까, 글로벌 브랜딩을 사랑하는 오세훈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집착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최근에 지어진 DDP는 건축 자체만 놓고 보면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주변 컨텍스트의 한계 때문에 지역 개발이나 관광의 확장성에는 어쩔 수 없는 제약이 있고… 결국 청계천 이후 그 오랜 시간 동안 서울에 이렇다 할 인상적인 공공건축물이 들어서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를 계속해서 옭아매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서울에서 가장 아이코닉하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가진 공공공간인 한강을 어떻게든 개발하려 하고, 오페라하우스나 서울링 같은 다소 억지스러운 랜드마크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게 아닐까..?

오세훈에게 건축은 멀리서 바라봤을 때, 혹은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보이는 게임 속 체스말 같은 존재다. 여기에 그릇된 ‘빌바오 효과’의 환상까지 더해져, 아이코닉한 랜드마크 하나를 딱 만들어놓으면 그것이 알아서 마법처럼 도시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까지 가지고 있다. 그에게 공공건축은 도시의 멋진 야경 속에서 빛나야 하는 랜드마크이자, 관광객과 시민들의 사진 속 배경으로 돋보여야 하는 조형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의 랜드마크에 대한 집착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사실 이렇게 도시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마치 심시티를 하듯 다루는 것은 전형적인 urban planning의 마인드셋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시를 멀리 떨어진 시점에서 바라볼수록, urban planning은 그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안을 걷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경험하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다. 오세훈 역시 강력한 urban planner, 어쩌면 디벨로퍼에 가까운 마인드셋과 철학을 가진 사람이다. 그에게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땅 위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개별적인 순간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 전체의 풍경과 모습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그의 도시계획 철학이 서울시가 발표하는 공공 프로젝트 이미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오세훈 시정에서 발표되는 공공 프로젝트의 투시도는 상당수가 공중에서 내려다본 조감도의 형태를 띤다. 조감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기 때문에 건물과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 맥락을 보여주기도 좋고 개발의 규모나 상품성을 부각하기에도 유리해서 urban planner나 디벨로퍼들이 가장 선호하는 뷰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신도시나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고 홍보할 때 가장 많이 사용 되어온, 소위 말하는 ‘부동산 뷰’다.

오세훈의 세운지구 (2024)

하지만 최근 건축계에서는 조감도를 예전만큼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새가 아닌 이상, 실제로 건축물을 조감도처럼 바라보고 경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건축가들은 실제 사람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아이레벨 투시도를 훨씬 많이 사용한다. 건축 전공자가 아니라면 별것 아닌 차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조감도인지 아이레벨 뷰인지는 그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철학과 컨셉의 차이를 꽤나 정확하게 보여준다.

세운상가 재개발 논쟁에서 오세훈이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 개념 중 하나는 ‘남북 녹지축 연결’ 이었다. 하지만 ‘녹지생태도심 재창조’라는 거창한 컨셉은 결국 지도 위에 그어진 초록색 화살표로 표현된 것이 전부였다. 정작 프로젝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심 공원에서의 경험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몇 장의 애매한 조감도를 통해 어렴풋이 드러날 뿐이었다. 그러다 종묘의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는 뒤늦게 실제 사람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뷰를 부랴부랴 스터디해 공개하며 해명에 나섰다. 처음부터 지도와 조감도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바라보고 평가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해프닝도 어쩌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녹지축, 서울시 (2025)

반대로 건축가들의 철학과 마인드셋을 상당히 가깝게 공유했던, 박원순 시기의 서울시 공공 프로젝트들이 조감도보다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아이레벨 투시도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박원순과 오세훈의 건축과 도시를 대하는 태도와 철학 자체가 표현 방식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건축을 넓은 도시적 관점에서 큰 맥락의 일부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스케일과 공간 경험을 중시할 것인지 — 결국 도시를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다만 수십 년 전 유행했고, 특히 이제 막 신도시 개발을 시작하던 나라들에서 많이 사용되던 디자인 언어와 방법론을 2026년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보는 것은 확실히 시대에 맞지 않는 올드한 느낌이 있다. 건축 디자인 자체를 떠나서 도시를 바라보고 다루는 접근 방식 자체가 그렇다. 서울링처럼 멀리 떨어져 바라봐야 비로소 전체 형태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감도에서만 제대로 보이는 랜드마크들이 근본적으로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원순의 세운지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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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새로운 대규모 개발이나 랜드마크 건설은 서울과 비슷한 규모의 세계적 대도시에서는 이제 예전만큼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서구의 대도시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신규 개발보다는 보존과 정비 중심으로 도시계획의 방향을 전환해왔다. 이미 개발될 만큼 개발된 도시에는 대규모로 비어 있는 땅 자체가 많지 않을 뿐더러, 자연스럽게 도시계획의 패러다임도 랜드마크나 인프라스트럭처 같은 ‘하드웨어’의 건설에서 지역성과 커뮤니티 같은 도시의 ‘소프트웨어’로 이동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서울의 인프라와 도시 시스템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역사적 레이어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시장 논리에 따라 앞만 보고 달리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 경제적·문화적 성장을 이루자, 한국에서도 개발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발 늦었지만 서울 역시 세계의 다른 도시들처럼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들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다른 도시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도시의 낡고 오래된 것들이 가진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 자체를 도시의 정체성으로 브랜딩해왔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청계천은 21세기 서울의 도시 패러다임이 건설과 개발을 통한 성장에서 복원과 보존을 통한 성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오세훈의 눈으로 바라본 2000년대 서울은 여전히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도시였을 것이다. 도시 곳곳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빠르게 개발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단지와 도시 인프라 중심의 개발이었다. 우후죽순 들어선 아파트들이 한강변의 스카이라인을 뒤덮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얼마 남지 않은 도시의 공공공간까지 점차 침범하고 있었다. 한강의 수변공간 역시 그 엄청난 규모와 지리적 위치가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의 공공건축과 도시 미관은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그런 도시를 바라보면서 차마 ‘아, 이제 세계 건축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니 우리도 개발을 멈추자’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당시 오세훈에게는 그때가 서울의 도시계획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이와 관련해 렘 쿨하스가 컬럼비아 건축대학원에서 했던 강연의 내용은 상당히 흥미롭다. 이미 지난 수십 년, 길게는 수세기 동안 개발을 경험하고 끝낸 서구 사회가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하려는 아시아 국가나 개발도상국을 향해 보존, 환경, 지속가능성 같은 반개발적 가치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일종의 위선이라는 지적이다. 자기들은 이미 100년 전부터 초고층 건물을 짓고 도시를 확장해놓고, 21세기에 들어서 막 도시를 개발하려는 아시아 국가들이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탄소를 배출한다고 자신들의 기준으로 비판하는 게 사실 얼마나 내로남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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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디자인 서울’을 통해 무질서했던 거리부터 하나의 체계로 정비하기 시작했고, 한강변 곳곳을 중점적으로 개발해 아파트로 뒤덮인 서울의 획일적인 스카이라인을 바꾸고자 했다.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속 프로젝트였던 난지, 뚝섬, 여의도 한강공원은 서울을 대표하는 수변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반포한강공원 역시 사계절 내내 사람들이 몰리는 대표적인 한강의 공공공간이 되었다.

당시 서울시가 배포한 도시계획 정책 자료들을 지금 다시 보면 꽤 놀라운데, 20년 전 공무원들이 발표한 정책 자료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단계별 개발 계획과 마스터플랜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실제로는 상당 부분 외부 용역이나 민간 전문가들이 만들었겠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웬만한 건축대학원이나 건축회사 포트폴리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느껴질 만큼 높은 수준의 제안서들이다.

디자인 서울은 서울의 도시 미관과 공공디자인을 몇 단계나 끌어올렸다고 생각될 정도로 도시의 모습을 크게 바꿔놓았다. 어떻게 보면 ‘공공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인식시키고 서울에 안착시킨 첫 발걸음이 아니었을까? 물론 도시가 나서서 디자인의 창의성을 제한하고 모든 것을 획일화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당시 중구난방의 디자인으로 가득했던 서울에 통일된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필요했다. 지하철 역사와 노점 부스 정비, 한강서체 등 디자인 서울에서 파생된 여러 결과물 역시 지금까지도 서울의 도시 이미지를 상징해오고 있는 성공적인 정책들이었다. (다만 서울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없애버린 정책은 아직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강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서울시 (2008)

디자인 서울을 발판으로 등장한 세빛섬이나 DDP 같은 건축물 역시 개개인의 호불호와는 별개로, 사람들이 최소한 건물의 디자인과 공공건축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층 강화된 경관심의는 이미 도시를 뒤덮을 만큼 늘어난 가로로 긴 정남향 ‘성냥갑 아파트’가 더 이상 무한정 증식하는 것을 막았고, 한강변의 스카이라인도 조금씩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urban planning이 주도적으로 지배하던 서울에 urban design이라는 개념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소 뒤처져 있던 공공건축과 도시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역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것이 오세훈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가 아닐까?

세운상가를 완전히 철거하고 그 자리에 녹지축을 조성한다는 제안 역시 이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한국의 건축학교에서는 세운상가를 거의 무조건 보존해야 하는 성역화된 건축물처럼 다뤄왔기 때문에, 처음 그 철거안을 접했을 때는 굉장히 radical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건축을 전공한 나조차도 당시 철거안이 상당히 강렬하고 설득력 있다고 느꼈을 정도였으니까… 건축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왜 아직까지 세운상가라는 낡은 흉물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려 하는지 이해가 아예 안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세훈의 세운지구 (2006)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비롯한 대규모 사업들이 좌초됐고, 2011년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판단으로 본인이 스스로 서울시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오세훈의 야심찬 계획들은 결국 대부분 아이디어에 머물고 말았다. 원래 계획했던 거대한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속 프로젝트들과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역시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 박원순이 시장직을 이어받으면서 서울의 도시정책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대규모 개발 대신 도시재생과 보존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었고, 오세훈이 구상했던 서울의 개발 계획들은 하나둘 폐기되었다. 그렇게 서울의 개발 시계는 약 10년 동안 멈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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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과 보존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박원순의 서울은 오세훈이 그려오던 서울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박원순의 서울에는 오래된 것들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가득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 건축계와 학계에는 도시 재생에 대한 낭만과 로맨티시즘이 넘쳐났다. 오래된 구조물을 살리면서 조금씩 고쳐 쓰는 디자인 — 도시 재생이 마치 정답인 양, 모든 사회적, 도시적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박원순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정책을 펼쳤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그 판단이 당시 서울이라는 도시에 알맞은 전략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마치 도시의 물리적인 틀과 하드웨어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유행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강제로 주입시키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서울은 런던이나 뉴욕, 파리가 아니었다. 서울이 처한 물리적·사회적 환경은 서구 도시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서울의 도시계획과 건축은 그래서 다른 글로벌 대도시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고 접근하기가 어렵다.

서울의 개발은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큰 비전이나 원칙하에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부분부분 쪼개진 조각들이 단기간의 비전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개발되었고, 그 부분들이 모여 다소 무질서해 보이는 큰 도시를 완성했다. (물론 그 무질서함이 서울의 정체성이라면 정체성이겠지만…) 그러다 보니 도시 안에는 자연스레 아직 제대로 된 도시계획이나 재개발 사업이 미치지 않은 지역들도 많았다.

그러나 충분한 역사적·문화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오래된 것은 무조건 일단 보존하고 재생하고 보겠다는 정책 기조가 서울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지역들은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지역 전체가 고스란히 도시 개발 계획에서 소외되곤 했다. 사대문 안을 비롯한 서울의 구도심도 마찬가지였다. 박원순이 수년간 공들인 창신동과 같은 도시 재생 사업지들이 대표적이고, 세운상가를 비롯한 그 일대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지역처럼 성역화된 것도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운상가 근처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그 일대는 차를 타고 다니기도, 걸어 다니기도 정말 불편하고 오래 머무르기 쉽지 않은 동네다. 미디어에 자주 소개되는 휘황찬란한 청계천과 활기찬 거리는 종로 쪽 초입부터 딱 세운상가까지의 모습이고, 세운상가를 경계로 거리 분위기가 180도 바뀐다. 낮에는 종묘나 주변 상점들 때문에 그래도 꽤 붐비지만, 밤이 되면 유동인구가 없어 무서울 정도로 깜깜하고 조용해진다. 끊임없이 소방 등의 안전 문제, 도시 경관 저해 문제 등이 제기되어 왔지만, 애초에 도로망 자체가 좁고 필지가 수없이 잘게 쪼개져 있어서 건물만 하나하나 고쳐 쓰거나 새로 짓는 것만으로는 환경 개선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오세훈이 추진해왔던 기존 세운지구의 재개발 방향을 완전히 뒤집기로 결정한다. 역사적 맥락을 존중하기 위해 주변 지역은 고층 개발안 대신 저층, 고건폐율의 ‘유럽식’ 소규모 개발안을 채택하게 되었다. 세운상가 역시 철거 대신 존치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러자 현실적인 문제가 덮쳤다. 높이 제한으로 사업성이 떨어지자 부지 매입, 주민 보상 비용 등을 마련할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국 사업 자체가 표류하게 되었다. 그렇게 개발 사업이 흐지부지되자 도시 재생 정책이 대신 내놓은 해답은 공중 보행로였다.

김수근이 처음 상상했던 원 설계안이자 세운상가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공중 보행로는 컨셉은 그럴듯했지만, 결국 그 컨셉만이 전부였다. 보행로 통행량 실적은 예측의 10% 가량 밖에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공중 보행로로 인해 1층에 햇빛이 들지 않으며 안그래도 죽어가던 거리가 더 활기를 잃게 되었다. 세운상가 위에는 옥상 정원이 새롭게 조성되었지만, 결국 낙후된 도심을 살리는 데는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세운상가 시티워크

무엇보다 기본적인 도시의 인프라가 제 기능을 못하는 낙후된 상태인데, 그런 곳들에까지 어울리지 않는 보존 모델을 적용시키려 한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개발이 필요한 곳은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보존이 필요한 곳은 보존하였다면, 서울이라는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문화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그리고 건축적으로도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20년 전 오세훈이 구상했던 서울의 하드웨어가 자리 잡힌 상태에서 박원순이 이어받아 소프트웨어를 다듬었으면 지금 서울의 모습은 어땠을까? 특히나 최근 K-컬처의 급성장 덕분에 한국의 문화적 자산과 브랜딩, 스토리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되어가고, 그 중심 무대인 서울 역시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는 도시로 급부상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더욱 더 이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만약 오세훈이 상상했던 도시의 큰 틀과 인프라, 밑그림이 완성된 상태에서 K팝 이나 영화가 터졌다면 정말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전 세계 팬들이 몰려드는 K팝 콘서트가 서울에서 열릴 때, 노들섬에 논밭이 아니라 공연장이 있었다면, K팝 뮤비와 드라마의 배경에 남산과 서울역의 보행로가 아닌 한강의 스카이라인과 수상 교통 인프라가 등장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쉽게도 서울의 하드웨어 성장 속도는 소프트웨어보다 딱 한 박자 늦고 말았다. 어쩌면 박원순은 조금 빨랐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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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여 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직에 복귀한 오세훈은 과거 자신이 추진했던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의 영광을 다시 한번 서울로 불러들이기 시작한다. 디자인 서울은 디자인 서울 2.0으로, 한강 르네상스는 그레이트 한강으로 다시 돌아왔고, 지난 10여 년간 거의 멈춰 있다시피 했던 서울의 대규모 랜드마크 건설과 개발 사업들은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이한다. 잊혀질 뻔했던 노들섬이나 용산 업무지구 등 과거에 추진되었다가 무산된 사업들 역시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오세훈이 2006년에 처음 꺼내 들었던 세운지구 재개발 계획 역시 20년 만에 다시 한번 새로운 개발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오세훈은 첫 임기 시절에도 최고 높이 122m의 고층, 고밀 개발을 추진했지만,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친 데 이어 사업성 확보, 각종 심의 및 행정 절차 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을 결국 풀어내지 못했다. 오세훈은 이번에도 20년 전과 같이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한 후 그 자리에 남북을 연결하는 녹지축을 조성하고 주변을 고층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드는 설계안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순히 김수근이 설계했다는 사실 이외에도, 세운상가는 team10의 철학이 실제로 현실화되어 지어진 전 세계의 몇 안 되는 건축물로 충분히 그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 내부에 들어가 보면 분위기는 매우 음침하지만, 물리적 공간 자체는 훨씬 더 좋은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옥상 정원에서 종묘 쪽으로 바라보는 뷰는 서울 시내 최고의 뷰 스팟 중 하나다.

하지만 단지 역사적인 구도심, 사대문 안, 종묘 인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운상가 일대의 지역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서구 건축계가 자기들끼리 만들어낸 잣대인 유네스코라는 방패 뒤에 숨어 감성에 호소하는 논리는 더욱 그렇다. 문화재 보호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도심 속 문화재를 죽어 있는 고립된 전시품, 털 끝 하나 건드려서는 안 될 성물 취급할 것이 아니라 현대 도심 속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는 유기적인 요소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운상가 일대가 개발된다고 종묘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묘가 도심 한복판에 고립된 채 남아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문화재와 신도심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한국에 유네스코라는 훈장이 더 이상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설사 유네스코 목록에서 빠진다고 해도 종묘 자체에 무슨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래된 것들은 새것과 같이 있을 때 오히려 더욱 그 가치가 빛난다. 오래된 것 옆에 오래된 것들만 있으면 그저 과거에 머무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종로와 을지로는 박물관이 아니고, 종묘와 세운상가는 박물관 속 전시품이 아니다. 도시가 박물관처럼 그대로 박제된 채로, 그리고 건축물이 성역화된 채로 과거의 시간에만 머무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살아 있는 도시가 아니라 죽어버린 세트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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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빛섬, DDP에 이어 노들섬, 그리고 세운상가까지, 근본을 알 수 없는 기괴한 랜드마크들이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도시를 빛내줄 해결책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오세훈의 방식 — 20년 전에나 하던 그 올드한 방식이 2026년 현재 서울 urbanism의 비전이라는 점이 참 안타깝게 느껴지다가도… 또 숨이 턱 막히는 무질서하면서도 획일적인 한강변 스카이라인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올드한 방법이 슬프지만 서울을 구원해줄 유일한 해결책인 것 같기도 하다. 

urban planning의 논리와 방법만으로도 도시가 성장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은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문화적으로 성숙해졌다. 20년 전 사용했던 개발 방식을 2026년에 그대로 답습하기에 서울은 그때와 문화적, 경제적 베이스 자체가 다르다.

랜드마크 건설, 인프라스트럭처 개발과 같은 대규모 개발 모델은 더 이상 서울이라는 도시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모델일 수도 있다. 부루마블처럼 도시 여기저기에 랜드마크를 마구 만드는 과거의 방법 역시 과연 2026년 서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물론 사진 찍고 홍보하기에는 좋겠지만, 그렇게 개발 논리에만 따라 짓다 보면 결국 건축은 없고 건물만 남을 뿐이다. 설령 그렇게 개발한다고 해도 서울의 건축 수준이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한 문화적 자산이 되지도 못한다.

세운상가도 그렇다. 고층 빌딩 개발이 가져다줄 경제 효과는 확실하겠지만, 분명 숫자와 도시의 개발 지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남북 녹지축을 연결하기 위해 지도 위에 강렬한 초록색 화살표를 그린다고 마법처럼 사람들이 즐기는 공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70년 전 제인 제이콥스가 이미 말했던 것처럼 실제 도시가 작동하는 방식과 사람들의 경험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히 책과 지도를 보고 숫자와 데이터만으로 도시를 판단하고 계획하기는 어렵다.

비록 박원순의 보존형 도시 재생, 소규모 생활밀착형 개발 모델은 실효성의 한계가 명확했지만, 그래도 당시 서울시가 시도한 접근법은 건축적으로도 매우 섬세하고 수준 높은 방법이었다. 이전에는 한국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서울의 건축적, 문화적 성장을 위한 귀중한 첫 걸음이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도시의 성장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철학의 다름이 있을 수는 있어도, 박원순의 서울에서 지금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배울 점들이 많다.

건축 디자인에는 단지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년 전에는 형태가 가장 중요한 건축적 요소였을지 몰라도, 현재 서울의 공공건축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껍데기가 아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이제는 단순한 외형과 껍데기의 디자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의 건축, 사람들의 경험 디자인까지 아우르는 디자인 서울 2.0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세훈은 디자인 서울을 성공적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그만큼 도시에서 디자인과 건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이미 과거에 자신의 실행력을 한 번 증명해내기도 했다. 단지 오세훈의 건축, 도시 정책이 과거의 성공에 취해 예전의 방법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그 능력과 방향이 좀 더 시대에 맞는 섬세함과 트렌디함을 가지기를 바랄 뿐이다.

돌이켜보면 서울은 너무 빨리 ‘개발 이후의 도시’를 꿈꿨고, 이제는 반대로 너무 늦게 ‘개발의 도시’로 돌아가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박원순의 서울에서 권력을 잡은 건축가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만을 좇을 때 어떻게 도시가 정체되고 작동하지 않는지를 이미 경험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개발의 시대로 돌아가 과거의 방법을 반복하는 것 역시 한 박자 늦은 해답으로 느껴진다. 지금 우리에게는 도시 전체를 보는 눈과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눈이 동시에 필요하다. 2026년의 서울에 urban planning의 큰 그림과 건축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경험 사이를 조율하는, urban design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다 🌝

한강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서울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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