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여기도 이런 너무 강한 mvrdv 스타일이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 mvrdv의 책이나 전시에서 볼 수 있었던, 실험적인 아이디어들과 디자인들의 망령이 남아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게 한 때 회사를 스타덤에 올려줬던 프로세스들이었고 당시엔 mvrdv만 할 수 있었던 디자인이었지만, 이젠 세월이 지나면서 너무나도 흔한 타이폴로지가 되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요즘엔 그런 개념적인 프로세스가 세계적인 건축 트렌드가 아니다보니, 디자인이 다소 옛날 스타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그럼에도, 그 디자인 프로세스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건 참 귀중한 경험이었다. 특히 밖에서 봤을 땐 그냥 매우 랜덤해 보이기만 했던 stack과 pixel 같은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사실은 굉장히 섬세한 프로세스를 거쳐 만들어진다는걸 알고 좀 놀랐다. 매스를 쌓을 때나 픽셀화 시킬 때도 다 mvrdv만의 확고한 방법과 원칙이 있어서, 역시 장인은 장인이구나 싶긴 했다.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강력한 개념과 radical한 아이디어는 mvrdv을 대표하는 장점이지만, 이젠 그런 실험적인 디자인들이 유행이 지났을 뿐더러 실제로 지어지기도 어렵고, 개념에 더 집중하다보니 건축의 외관이나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최근엔 회사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아진 듯 하다. 특히 그런 개념적인 mvrdv 스타일의 작품들이 요즘 공모전에서 많이 지고 있는 것도 한 몫 하는 듯 했다. 항저우 공모전을 할 때도 시니어들이 이렇게 접근하면 공모전에서 질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았지만, 타협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밀고 가려는 위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위니의 꿈 같은 스케치와 아이디어들은 여전히 매력적이라서, 그런 conceptual한 생각들을 어디까지 밀고 나가야할지, 아니면 적당히 타협해야 할지가 회사 내에서도 항상 이슈였다. 최근에 아시아에 특히 그저그런 애매한 프로젝트들이 그렇게 많아지는데 계속 시도하는 것도 회사의 정체성을 최대한 지키려는 노력 같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회사가 매우 상업화 되어 버렸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사실 mvrdv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성공적인 아시아 시장 개척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이나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건축 시장은 아이디어에만 머물러 있던 많은 서양 유명 건축가들의 프로젝트가 현실화될 수 있는 귀중한 무대를 제공해 주었다. 건축 트렌드를 이끌던 서양 건축회사들의 실험적인 아이디어들은 아시아의 자본과 서양 스타아키텍트를 동경하는 분위기와 맞물려서 여러 도시에 마구 지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국제적인 위상과 유행, 네임밸류에 쉽게 휩쓸리는 동아시아의 풍토 덕분에, 클라이언트나 대중들의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유럽이나 미국 시장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mvrdv 역시 이런 흐름에 큰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건축 회사들 중 하나이고, 최근까지도 한국이나 중국에 새 프로젝트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다만 mvrdv의 프로젝트들이 개념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실제로 지어질 때 많은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히고 타협하면서 그 결과물이 아이디어일 때 보다 매력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 보였다. 그만큼 아시아 도시들에 괴물을 많이 만들어 놓기도 했고... 특히 한국에 있는 mvrdv의 많은 프로젝트들이 그 명성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니까, 요즘 들어 여기저기서 그렇게 욕을 먹는 것도 이해가 간다. 사실 mvrdv는 도미니크 페로와 함께 정말 신기할 정도로, 한국에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외국 건축 회사 중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최근엔 그 기세가 한 풀 꺾인 느낌이기도 하고, 또 그 유행이 스노헤타와 헤더윅한테 넘어간 것 같아서 앞으로 한국에서의 mvrdv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지나고 보니 정말 1년이 금방 흘렀지만, 그래도 유럽 생활에 그새 적응이 된 덕분인지 코펜하겐 보단 몸도 마음도 훨씬 편한 6개월을 보냈다. 항상 차갑고 삭막한 느낌이었던 덴마크에 비해, 훨씬 따뜻하고 힙한 로테르담의 분위기가 잘 맞았던 것 같다. 날씨도 풀리면서 암스테르담이나 델프트나 헤이그 같은 가까운 도시로 주말마다 친구들과 잘 놀러도 다녔고, 특히 금요일에 퇴근하고 바로 기차나 비행기타고 유럽 다른 나라 도시에서 주말에 놀다 올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힙한 로테르담만큼 회사도 언제나 playful하고 chill한 느낌이라 좋았고 무엇보다도 너무 좋은 업무 분위기와 극강의 워라밸이 맘에 들었다. 가끔은 이 회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일 하는데 왜 안망하지? 싶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마침 올해 mvrdv 뉴욕 오피스를 오픈 중이라고해서 기대가 크다. 뉴욕에서도 이런 워라밸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