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ri&hu + gsd (1)

2022.01 | cambridge

고대에서 gsd까지 그동안 많은 수업을 들었고 많은 교수님들을 만났지만 네리후는 앞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내 학창시절 최고의 수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수업 크리틱부터 마지막 리뷰까지 기억에 남을 인상적인 순간들이 많았고, 학기가 끝난 이후에도 여운이 정말 많이 남는 스튜디오였다. 사실 처음 학기 시작할 때는 기대가 아예 없었지만, 끝나고나니 프로젝트 결과물 뿐만 아니라 교수의 티칭 스타일과 수업 내용, 그리고 마지막 리뷰 코멘트들까지 정말 맘에 들었던 학기였고 그만큼 많이 배우기도 했다. 아마 미국에 오고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말 후회 없이 모든걸 쏟아 부은 학기였어서 그 결과가 더 갚지게 느껴졌던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스튜디오가 그렇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항상 아쉬운 부분이 많이 생기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번 스튜디오도 좋아했던 만큼 참 아쉬움과 여운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건축과 urban design에 대한 내 스탠스를 다시 한번 정리하고,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가져다 준 스튜디오기도 했다. 물론 스튜디오가 끝난 후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진 못했지만,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내가 가졌던 고민들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네리앤후를 처음 알게 되었고 또 실제로 처음 본건 2016년 베를린에서였다. 학부 4학년 때 운좋게 벨룩스 공모전의 아시아 대표로 선발되었고, 2차 발표를 베를린에서 열린 world architecture festival에서 하게 되었다. waf는 전세계의 많은 회사들이 참가해서 서로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평가하는 자리였는데, 네리앤후도 그 회사들 중 하나였다. 신나서 유명한 회사들이랑 건축가들을 구경하러 하루종일 여기저기 부스를 돌아다니다가 어쩌다 네리후의 발표를 듣게 되었는데,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중국인 듀오였지만 아직도 그때 넋 놓고 발표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선 두 명 다 영어와 말을 정말 잘했고, 또 프레젠테이션을 진짜 기가 막히게 잘했다. 그때 바로 구글에 찾아보고 웹사이트에 들어가봤는데, gsd 출신인걸 보고 아 역시 건축고수들은 다 하버드구나…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9년 가을, gsd에 입학하게 되었다. 마침 내가 학교에 오고 첫 학기 때 네리후가 옵션 스튜디오를 맡아서 티칭을 하고 있었어서, 거의 3년만에 네리후를 실제로 다시 보게 되었다. 첫 주에 옵션 스튜디오 로터리 프레젠테이션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말을 참 잘하길래, 혼자 감탄하면서 gsd에 있을 때 꼭 한 번 수업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 첫 학기엔 urban design 코어 스튜디오를 들을 수 밖에 없었어서 그 때는 네리후 수업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나서 처음 1년 동안은 urban design 스튜디오와 수업만 잔뜩 듣게 되었다. 또 그 이후에도 1년동안 인턴을 하며 마스터플랜만 계속 하고 나니, 학교에 다시 돌아가면 스튜디오는 urban 보단 꼭 건축건축한 스튜디오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 간 유럽에 있으면서 잊고 지냈던 유럽 건축 뽕이 살짝 다시 생기기도 했고🥺

그래서 사실 지난 학기 스튜디오 로터리를 할때 1지망은 크라이스트 간텐바인이었다. 교수 라인업이 꽤나 좋은 학기였고 토시코나 코헨 등 예전부터 듣고 싶은 수업도 있었지만, 정말정말 간텐바인을 듣고 싶었어서 인기 많은 네리후를 2지망으로 쓰면 1지망이 될 것 같다는 어줍잖은 전략으로 베팅을 했다. 하지만 모든 애들이 같은 생각으로 크라이스트 간텐바인을 노리고 있었고, 오히려 정말 제발 안됐으면 좋겠던 네리후에 당첨되어버렸다. 그땐 네리후 사이트가 중국이라 듣기 싫기도 했고 또 유럽 스튜디오를 듣고 싶었어서, 오히려 3지망이었던 파시드의 하우징 스튜디오가 됐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았다. (만약 파시드 들었으면 최악의 학기가 되었을지도...)

한 학기 운명을 운에 맡겨버리는 공포의 로터리

사실 네리후 스튜디오는 gsd에서 항상 가장 인기가 많은 옵션 스튜디오 중 하나라서, 언제나 사람이 몰려서 로터리 경쟁률이 꽤나 치열한 편이다. 워낙 네리후가 요즘 잘나가기도 하고 서양 애들 입장에서는 자연스레 관심이 많이 가는 아시아 스튜디오라, 듣고 싶다고 들을 수 없는 스튜디오긴 했다. 네리후 스튜디오에 된 걸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다만 그때까지만해도 네리후가 매우 감성적인 디자인을 하는 걸로 알고 있었어서 로터리 결과를 보고, 스튜디오 시작하기도 전에 내 스타일이랑 많이 안맞을까봐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한시간만에 현실이 되어버렸다…

gsd는 옵션 스튜디오 로터리 결과가 나오자마자 그 날 바로 한시간후에 스튜디오끼리 모이게 된다. 공식적인 첫 수업 시작 전에 다같이 인사하고 스튜디오를 소개하는 자리지만, 네리후 스튜디오는 이 오티 때 항상 각자 자기 포폴과 cv를 가져와서 모두들 앞에서 브리핑시키는 무자비한 공개처형 시간이 있다. 각자 자기 출신학교와 들었던 수업 교수들, 일했던 경력이랑 포트폴리오를 보고 그거에 맞는 크리틱을 해주겠다는 목적이긴 한데, 사실 진짜 그게 실제로 말처럼 수업에 반영 되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스튜디오에는 총 12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 maud는 나 혼자였고 나머지는 다 march1 아니면 2였다. 그리고 린던은 나를 콕찝어서 ‘우리 스튜디오에 urban design student가 딱 한 명 있는데, 우리들 수업은 모형과 디테일, 그리고 건축적으로 깊게 들어갈껀데 따라올 수 있겠냐’ 고 물었다. 질문의 의도가 뭐였는지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학부 때 건축을 해서 아마 할 수 있을꺼라고 얼버무리면서 어찌어찌 넘어갔다. 린던은 그리고 모두에게 이 스튜디오를 왜 꼭 듣고싶은지 수업끝나고 statement를 써서 내라고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다음주부터 학기가 끝날때까지 매주 스튜디오에 writing을 써가야하는 과제가 생겼다. 아마 그때부터 그 학기는 잠을 푹 못자게 되지 않았나 싶다🥺

네리후 스튜디오는 gsd 안에서도 꽤나 빡세기로 유명한 옵션 스튜디오 중 하나이다. 매주마다 핀업이 있고 요구하는 매테리얼의 양도 굉장히 많다. 또 아시안 교수들이라 그런지 아시아 부모들처럼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고 푸쉬가 상당히 심하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학생들 개개인의 프로젝트들을 다 신경써주고 관리를 잘해주는 참교수지만 그만큼 많이 힘든 스튜디오였다.

그래도 네리후는 수업을 안빼먹고 매주 두번씩 꾸준히 수업을 계속해줘서 좀 의외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사실 gsd 옵션 스튜디오 중에 매주 그렇게 수업을 하는 스튜디오도 흔하지 않은 편이긴 하다. 보통 옵션 스튜디오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전세계 여러 도시에서 practice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거의 보스턴으로 직접 오지는 않고, 주로 온라인으로 매주 수업을 하면서 3주마다 학교에 오는게 일반적이다. (유명한 회사나 건축가일수록 학교에 잘 안오고 온라인으로 때우거나 밑에 직원을 대신 보내긴 하지만… ) 다만 네리후도 상하이를 베이스로 하는 회사인데다가 코로나 때문에 중국에서의 여행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아서 일정이 상당히 들쑥날쑥했다. 로자나가 첫 한 달 동안은 계속 보스턴에 있으면서 매주 in person 수업을 했고, 린던이 마지막 한 달 동안 보스턴에 있으면서 파이널 리뷰 때 까지 학기를 마무리 하게 되었다. 항상 둘 중에 한 명만 보스턴에 있어서 나머지 한 명은 중국에서 줌으로 같이 크리틱을 했는데, 중국과의 시차 때문에 수업 시간이 보통 저녁 7시 이후에 잡혀서 좀 끔찍했다…😇

게다가 로자나와 린던은 학생들 개개인마다 위챗방을 따로 만든 다음에 자기들이 생각날 때마다 밤낮 상관없이 레퍼런스 이미지나 코멘트를 보내서, 밤낮 평일주말 구분없이 수업이 계속 되는 것 같아 항상 긴장된 느낌의 연속이었다. 워낙 로자나와 린던 둘 다 워낙 말도 잘하고 카리스마가 있다보니까, 발표 할 때도 애들이 긴장돼서 숨을 못쉬겠다고 하고 또 한국 설계 수업마냥 수업도 안오고 잠수타고 했던거 보면 나만 스트레스 받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무한 크리틱의 방

린던은 건축에서도 사랑에서도 엄청난 로맨티스트인데, 사람이 워낙 똑똑하고 아는게 많다보니 모든걸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rationalize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 그러다보니 학생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디자인하는지 단번에 바로 이해하고 그에 맞는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교수로서는 정말정말 대단한 능력이 있다. 또 자신의 디자인적 취향을 절대 강요하지 않고, 학생의 디자인 스타일과 프로젝트에 딱 알맞은 크리틱을 해준다. 우리 스튜디오에도 sciarc에서 와서 거기서 하던대로 정말 괴물만 잔뜩 만들어대는 애들이 몇몇 있었어서, 나도 속으로 ‘얘넨 도대체 왜 네리후 수업을 신청한거지?’ 생각했었는데, 린던이 얘기를 끝까지 열심히 다 들어주고 괴물들 나름의 가치와 argument를 찾아주는 걸 보고 역시 참교수긴 하구나 싶었다.

반면에 로자나는 사람같은 건축 로보트라… 대화하는게 여러모로 상당히 어려웠다. 물론 린던이나 로자나나 둘 다 정말 똑똑하고 둘다 말을 참 잘하지만, 린던이 잘 웃어주고 학생들 말을 잘 들어주는 스타일인데에 반해, 로자나는 완전 이성적이고 냉철한 기계같은 사람이라 항상 데스크 크리틱에서도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애들 크리틱 때 보통 로자나가 필터 없이 자기 생각나는대로 말해서 학생들 멘탈을 박살내놓고, 린던이 열심히 포장하면서 위로해주는게 메인 패턴이었다. 사실 둘이 같이 데스크 크리틱을 하면 둘이 자기들 옛날 연애 얘기, 결혼 얘기 등등 하면서 사진 보여주고 추억팔이 하는 걸 구경하는게 좀 재밌긴 했다. 같이 레퍼런스 사진 찾다가도 서로 ‘우리 신혼 여행가서 본 그 건물 뭐였냐~ 거기 앞에 맛집있는데~ 그 때 우리 싸웠다~’ 등등 크리틱이 거의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 하다가도 결국에는 둘 다 항상 비슷한 크리틱 결론에 도달하고, 또 각자 따로 가져다 주는 레퍼런스가 신기할 정도로 비슷했던 걸 보면, 서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닮아서 둘이 잘 어울리고 그래서 사무소도 잘 운영하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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