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rdv + 로테르담 (1)

2021.07 | rotterdam

덴마크에서의 인턴 생활이 반 정도 지났을 무렵,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whatsapp으로 kwang이 맞냐며 연락이 왔다. 그러고는 얼마 후에 네덜란드에서 전화가 와서 대뜸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면 되니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처음엔 사기인가? 싶었지만 그렇게 인터뷰도 없이 매우 인포멀하게 인턴을 하기로 금방 결정되었고, 또 급하게 이사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 그때쯤 슬슬 코펜하겐 생활이 지겨워졌기도 했고… mvrdv는 워낙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회사라 큰 고민없이 이직을 결심했다.

로테르담은 예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 곳이긴 했는데도, 북유럽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넘어가니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스키폴 공항이 있는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한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금방 로테르담이 나온다. west8이 디자인 한 웅장한 central station에서 내려서 시내 중심부로 천천히 오다보면 코펜하겐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기괴하게 생긴 건물들이 거리에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제서야 로테르담에 온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겨울이 끝나가는 것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덴마크에 비해 날씨도 훨씬 따뜻하고 거리도 코펜하겐과 다르게 정말 활기찬 분위기였다. 사실 덴마크도 코로나에 상당히 무감각한 느낌이라 놀랐었는데, 여기는 아예 코로나가 없었던 것처럼 마스크는 커녕 공원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어서 또 한번 문화적 차이를 실감했다. 마침 집이 mvrdv가 디자인 한 markthal 바로 옆에 있어서, 짐을 풀자마자 동네 산책도 할 겸 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거짓말처럼 집 바로 근처에 한인마트가 있었는데, 6개월만에 보는 한국 냉동식품과 음식들을 보고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갈 뻔 했다. 훈련소 수료식 날이 생각나던 비오는 로테르담에서의 첫날 밤에, 혼자 눈물 젖은 비비고 냉동만두를 구워 먹으면서 코펜하겐에 대한 미련이 싹 사라졌다…😌

de rotterdam + erasmus bridge

로테르담은 코펜하겐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전체적인 건축 수준이 상당히 높은 도시이다. 코펜하겐이 약간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의, 주변 컨텍스트과 어울리는 건축이 주를 이룬다면, 로테르담은 좀 더 실험적이고 튀는 건물들이 많다. 로테르담은 세계대전 중에 도시 대부분이 폭격으로 파괴되어서 도시의 상당 부분이 전후에 재건되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유럽 구도심과 다르게 도로도 훨씬 넓고 비교적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20세기 후반 로테르담은 전세계적으로 한창 유행하던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들의 주 무대가 되었고, 최근까지 개성있는 현대건축물이 도시 여기저기에 꾸준히 지어지고 있다. 거의 매 블록마다 oma나 mvrdv, unstudio 등등 유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현대건축의 성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mvrdv house라고도 불리는 로테르담 사옥은, 195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을 mvrdv가 직접 디자인하고 리모델링해서 쓰고 있다. 2층의 작은 건물이지만 그래도 안에 들어가는 순간 높은 층고와 함께 mvrdv 특유의 playful한 분위기가 확 느껴진다. 특히 회의실들을 인테리어부터 가구까지 다 페인트로 색칠해버렸는데, 일러스트로 그림 그릴때나 하는 표현을 현실로 옮겨놔서 꽤나 인상적이었다. mvrdv의 드로잉이나 다이어그램을 보면 프로그램이나 공간을 강한 원색으로 칠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방을 핑크색이나 오렌지색 등등으로 칠해 놓을 줄은 몰랐다. 그리 좋은 아이디어 같진 않았지만… 또 탁구대로 미팅룸 테이블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거기서 회의도 하고 종종 탁구도 치고 하는데, 소소하지만 그래도 mvrdv의 바이브를 잘 보여주는 재밌는 부분이었다. 회사는 200명 이상의 상당히 큰 규모인데, 아직 코로나 때문에 재택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항상 한산하고 조용해서 오히려 좋았다.

meeting room

mvrdv는 매년 두번씩 인턴을 채용하는데, 각각 3월이나 9월에 시작해서 6개월동안 일하게 된다. 한 라운드 마다 20명이 좀 안되는 인원을 뽑는데, 유럽회사라 그런지 대부분이 유럽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었다. 첫 날 오티에서 시니어가 인턴들 한명한명씩 소개를 하며 각자 포트폴리오에서 어떤 프로젝트는 어땠고, 어떤 부분이 회사와 잘 맞을 것 같아서 뽑았고 등등을 짧게 리뷰해주는데, 진짜 이건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또 어디에서도 절대 못 느낄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보통 매일 서버에 100개 정도씩 전세계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가 쌓인다는데, 이 정도 규모의 세계적인 회사가 정직원도 아닌 인턴 포트폴리오를 그렇게 세심하게 리뷰하고 뽑는다는게 좀 신기했다. 사실 포트폴리오 리뷰는 학교에서도 안해주는데 회사 리크루터한테 그런 피드백을 듣는다는게 참 귀한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나의 경우엔 gsd 첫학기 코어 때 했던 보스턴의 마스터플랜을 좋게 봐주었고, 그래서 비슷한 컨텍스트의 waterfront 마스터플랜 프로젝트 팀으로 배정받게 되었다.

mvrdv는 프로젝트 지역이나 성격에 따라 회사를 안에서 다시 여러 개의 스튜디오로 나눈다. 그리고 각각의 스튜디오마다 상당히 독자적이고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직원을 새로 뽑을 때에도 각 스튜디오의 개별적인 채용 프로세스가 있고, 담당하는 founding partner들도 다 다르다. 내가 속한 곳은 위니마스가 담당하는 아시아 스튜디오였는데, 아무래도 최근엔 아시아에 프로젝트가 가장 많아보니 회사 안에서도 아시아 스튜디오 규모가 제일 컸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중국의 마스터플랜을 담당하는 작은 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전부터 중국 프로젝트를 하는게 그렇게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스터플랜은 꼭 회사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었고 위니 소속 팀이라 프로젝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까지 다섯명 정도 되는 그렇게 크지 않은 팀이었는데, 상하이와 항저우의 마스터플랜 공모전을 하게 되었다. 공모전이라 그런지 위니와의 미팅도 많았고 일정이 꽤 촉박해서, 인턴이어도 주니어랑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일하게 되었다. 좋게 말하면 인턴한테 잡일만 시키지 않고 디자인도 시키고 인디자인도 시켜서 좋았지만, 사실 인턴한테 돈도 잘안주면서 뭘 그렇게 바라는게 많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단순 프로덕션이 아닌 디자인 프로세스에 온전히 참여하고 배울 수 있었던 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다만 아시아 스튜디오 자체에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워낙 많아서 그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아시아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서양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디자인하는 새로운 프로세스를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동양인들이 많다보니 접근 방식이 그렇게 신선하지는 않았고 익숙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 부분은 회사에 동양인 비율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은 big와 반대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프로젝트마다 항상 팀을 새롭게 구성하는 big의 시스템과 달리, 지역별로 스튜디오를 정해놓고 프로젝트가 달라져도 팀의 구성이 크게 바뀌지 않는 mvrdv의 시스템이 더 좋은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당연히 지역의 컨텍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전문성을 유지하기엔 유리하겠지만, 프로젝트의 접근법이 항상 반복적이고 결국 결과물도 식상해지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mvrdv house

프로젝트를 하면서 mvrdv에 놀란 점 중 하나는, 회사의 세계적인 규모에 비해 아직도 hierarchy가 엄청 강하다는 것이다. 세 명의 founder 아래에 파트너도 여러 명 있고 스튜디오마다 디렉터도 있지만, 아직도 founder의 디자인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강하다. 항상 위니의 취향과 의견이 1순위여서, 다른 파트너나 디렉터가 디자인 의견을 크게 낼 수도 없고, 미팅 때에도 위니가 보낸 코멘트나 스케치를 머리를 맞대고 해석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프로젝트를 할 때 시행착오도 많았고 어쩔 수 없는 시간낭비도 많았다. 물론 경험이 많아질수록 그래도 위니의 취향을 어느정도 잘알아서 도움되는 조언들을 주긴 했지만, 결국 모든 회사가 위니 한 명을 만족시키기 위한 디자인을 하는 느낌이었다. 비야케가 더이상 거의 프로젝트에 크게 상관 안하고 파트너와 pm이 주로 디자인을 이끌어가는 big와 정반대였다.

위니는 사소한 디자인 하나하나부터 다이어그램 색깔 하나하나까지 다 컨트롤하는 성격이라, 미팅 때 프로젝트의 중요한 부분보다 사소한 디테일을 지적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파트너들이나 시니어들도 이런 부분을 알고 있어서, 미팅 때 괜히 위니가 쓸데 없는 곳에 시간을 안쓰게 하려고 보여주는 내용을 최대한 줄이기도 했다. 또 위니는 마감이 다가올수록 극도로 불안해지고 예민해지는 성격이어서 pm들이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는 것 같았다. 공모전을 하면서 매주 업데이트를 이메일로 공유할때마다 짜증 섞인 코멘트가 잔뜩 돌아오니까, 나중에 마감 때는 위니 몰래 그냥 제출해버리기도 했다.

결국 공모전은 당선 되지 못했고 결과물 퀄리티도 사실 그냥 그랬지만, 그래도 뭔가 실무에서 마스터플랜의 정석적인 프로세스를 시작부터 끝까지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아무래도 아시아의 마스터플랜을 담당하는 팀이다 보니까, 서울로나 잠실 마스터플랜 등 한국 프로젝트에 관한 스토리나 뒷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하거나 그동안 혼자 공모전을 하면서 마스터플랜과 urban design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던 부분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답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항상 이런 리서치를 베이스로 하는 디자인이 학교가 아닌 실무에서도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 제안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궁금증이 있어왔는데, mvrdv에서의 짧은 경험은 그래도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것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주었다. 워낙 마스터플랜의 경험이 많은 회사이기도 하고, 현대 도시의 urbanism 트렌드에 큰 영향을 준 회사이니, 그 조직에 몸 담으며 옆에서 지켜 보는 것 만으로도 많이 배울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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