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ri&hu + gsd (2)

2022.01 | cambridge

네리후 스튜디오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보다 건축을 대할 때 상당히 감성적이지만 또 동시에 매우 이성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성적인 프로세스와 로직이 크리틱이나 티칭 방식에서도 잘 드러나서 좋았다. 나는 순전히 주관적인 감각에서 만들어지는 형태나 디자인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건축은 학교에서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근데 네리후는, ‘디자인은 어차피 주관적이니,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들 의견은 크게 신경쓰지 말고 너 하고싶은대로 디자인 해라’ 라고 해서 좀 의외였다. 사실 네리후는 한국에선 건축보다는 인테리어로 많이 알려진 회사이고, 주로 materiality를 강조하는 reuse 프로젝트에서 감성적인 공간을 많이 만들다 보니(사실 네리후도 좀 센스로 디자인하는 느낌이긴 하다) 수업에서도 재료나 디테일,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는 법을 위주로 가르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러티브와 로직, 컨셉에 관한 코멘트가 훨씬 많았어서 이 부분은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린던이 항상 말버릇처럼 하던 말을 빌리면, 자기가 gsd에 다닐 때 thesis advisor였던 라파엘 모네오는 엄청나게 컨셉츄얼한 사람이었고, 오히려 가장 컨셉을 신경쓸 것 같은 렘 쿨하스는 미술관에 그림이 운반되는 동선이 해결 안되면 크리틱도 안할정도로 practical한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네리후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디자인과 디테일 뿐만 아니라, 컨셉부터 디자인 로직, 그리고 내러티브까지 프로젝트의 모든 부분을 매우 강조했다. 항상 자기들 옵션 스튜디오는 mini thesis라고 하면서 프로젝트가 그만큼의 강력한 argument와 설득력을 가지기를 원했는데, 감각적인 이쁜 디자인을 하면서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네리후 스튜디오의 핵심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학기 초에 수많은 리딩과 리서치와 토론를 해야만 했고, 또 매주 글을 써서 프로젝트 내러티브와 컨셉을 다듬으면서 교수를 설득시켜야 했다. 그땐 정말 힘들었지만 학기가 지날수록 그 argument가 점점 clear해지고 강해지는게 보여서, 전체적인 프로젝트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 학기가 시작할 때 린던이 학기가 끝나고 나면 good writer는 아니어도 okay writer 정도는 될꺼라고 했었는데 실제로도 statement쓰는 실력이 좀 늘긴 한 것 같아서, 나중에 나도 스튜디오를 티칭할 때 꼭 학생들에게 글을 쓰는 과제를 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네리후 스튜디오는 사이트가 중국이었는데, 스튜디오 주제는 cultural tourism으로, 네리후가 요즘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밀고 있는 토픽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다른 지역의 문화를 관광하는 경험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해석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스튜디오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고대 도시에 대한 tourism을 주로 다루게 되었다. 좀 과하게 중국이라는 컨텍스트와 문화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된 주제이긴 했지만, 네리후가 워낙 중국 건축의 아이덴티티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걸 자기들 practice의 정체성 중 하나로 삼고 있으니 스튜디오 주제가 중국인 것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프로젝트 스케줄은 매우 무지막지했지만 그래도 스튜디오 포맷 자체와 내용은 꽤나 흥미로웠는데, 한 학기가 총 세 가지의 연결된 프로젝트로 구성되었다. 첫 프로젝트는 상하이의 버려진 기차역을 각자 자신들이 상상하는 tourism을 위한 새로운 기차역으로 레노베이션하는 프로젝트였다. 두번째로는 그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하고, 마지막은 그 기차의 목적지인 고대 도시에 위치한 호텔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래도 나름 cultural tourism의 관점에서 보면 꽤나 짜임새있고 그럴듯해 보이는 구성이긴 했다. 처음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기차역에서의 경험에서부터 이어지는 기차 안에서의 과정, 그리고 도착한 여행지에서의 궁극적인 경험까지, tourism 과정 전체를 어떻게 건축적으로 디자인 할 수 있는지 정말 모든 것을 생각해야하는 매우 야심찬 스튜디오였다. 게다가 기차역부터 목적지까지의 여정이 예전 실크로드의 경로와 상당히 비슷해서, 문화적인 교류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 등 생각해볼만한 점이 많기도 했다.

사실 프로젝트를 한 학기에 3개를 한다는 건 코어가 아닌 옵션 스튜디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네리후도 자기들도 처음 해보는 포맷이라 학생들보다 자기들이 더 걱정된다고 했다. 네리후가 이번 스튜디오에서 기대했던 이상적인 그림은, 3개의 서로 다른 프로젝트들이 각자 자기가 상상하는 cultural tourism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면서도 하나의 큰 시나리오와 argument를 공유하는 그림이었다. 다만 역시 파이널은 파이널이라서, 처음 두 개의 프로젝트보다는 마지막의 호텔 프로젝트에 모두의 관심사가 집중되고 그만큼 중요해지는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처음 2개의 프로젝트가 마지막 프로젝트를 위한 빌드업과의 느낌으로 진행되게 되었다.

나는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보통 컨셉과 내러티브를 확실하게 정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공모전을 할때도 그랬고, 스튜디오에서도 그랬고, 항상 프로젝트 전체에 일관성있고 clear한 argument와 내러티브가 있는 프로젝트를 좋아한다. 그래서 주로 학기 초반에 컨셉을 정할 때 공을 가장 많이 들이고, 리딩과 리서치를 하면서 제일 시간 투자를 많이 한다. 특히 이번 스튜디오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테마와 스케일의 프로젝트가 따로 노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큰 컨셉과 내러티브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게 시작부터 가장 큰 challenge중 하나였어서, 학기초에 가장 에너지를 많이 쏟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다행히도 첫 주부터 엄청난 양의 리딩과 리서치를 하게 되어서, 컨셉을 정하는데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사실 이건 원래 네리후 수업에선 전혀 기대를 안했던 부분이지만, 오히려 평소에 하던 것 이상으로 심도 있게 리서치와 리딩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 4주는 로자나가 혼자 보스턴에 있으면서 수업을 이끌어갔는데, 역시 프린스턴 출신답게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생각하고 건축적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푸쉬했다. 아무래도 로자나가 아카데믹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다보니 초반의 리서치와 argument를 정하는 부분을 맡아서 하지 않았나 싶지만… 근데 워낙 자기가 똑똑하고 잘났다보니 멍청한 학생을 이해하진 못해서 그렇게 잘 이끌어주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얼마 안가 린던이 바로 합류하면서 진도가 쭉쭉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가져간 tourism의 컨셉은 hybrid 였는데, 첫 프로젝트의 사이트인 상하이의 역사적인 정체성에 대해 조사하면서 힌트를 얻었다. 동서양의 문화가 섞이며 전에 없던 상하이만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상이 hybrid라는 개념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cultural tourism, 여행의 과정 자체가 사람들의 기존 경험과,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경험이 섞이는 hybrid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네리후도 여행과 relevant한 주제로 잘 정한 것 같다길래 그때만해도 남은 학기가 순탄하게 잘 풀릴 줄 알았다…

첫 프로젝트인 기차역 레노베이션은, reuse 프로젝트였던만큼 기존의 materiality를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materiality와의 contrast를 강조하는 material hybrid 였다. 예전에 학부 4학년 때 스튜디오에서 충정아파트 레노베이션을 한 적이 있었어서, 그 때 한번 해봤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에도 기존 아파트의 건축을 최대한 보존하고 최소한의 intervention을 하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했었는데, (그래도 고대에서 배운게 좀 있긴 했던건지)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좀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하나 조금 신기했던 건, 비록 이 사이트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이라거나 문화 유산은 전혀 아니긴 했지만, 스튜디오에서 기존 건축을 보존하는 쪽으로 디자인 한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materiality를 극대화 시키는 reuse 프로젝트는 네리후의 전문 분야다보니까 스튜디오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줄 알았어서 좀 의외였다. 그만큼 재밌고 도움 되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고… 네리후도 의외였는지 데스크크리틱 중에 지나가는 말로 ‘너는 이 스튜디오에서 혼자 오래된 건축을 respect 할 줄 아는구나’라고 해줬는데, 왠지 내심 네리후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train station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으로 했던 미드리뷰에서, 정말 제대로 탈탈탈 털렸다... 물론 발표를 그지같이 한 내 잘못이 크긴 하지만, 게스트크리틱 중에 내 차례에 갑자기 중간에 새로 조인해서 스튜디오 주제나 사이트를 아예 모르는채로 발표를 들어서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들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쓸려서 크리틱 방향이 전체적으로 이상한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특히 제일 크리티컬 했던 건 중국 회사인 open architecture의 wenjing의 크리틱이었는데, 내가 studio brief 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며, 이 스튜디오는 단순히 공간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하는게 아니라 travel의 의미에 대해 깊게 탐구해야하는 스튜디오인데 나는 예쁜 이미지만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하.. 정말 그때 바로 반박하고 제대로 싸웠어야 하는데…그러지 못한게 아직도 후회가 많이 된다. 일단 그 말을 듣고 멘탈이 바로 나간데다가 시간 없다고 다른 주제로 바로 이야기가 넘어가서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웬징은 자기 갸야된다고 바로 나갔다) 다행히 얼마 안가서 바로 네리후한테 위챗으로 개인 메세지가 와서 invalid한 comment니까 신경쓰지 말라고해서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그래도 앞으로 평생 open architecture을 싫어하기로 다짐했다🙂

두번째 프로젝트였던 기차 인테리어는 정말 살면서 처음 해보는 유형의 프로젝트였다. 워낙 내가 예전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거의 없었는데다가 지금까지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없었어서, 정말 어떻게 프로젝트를 시작 해야 할지 감조차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그냥 건축 프로젝트 하듯이 해버렸는데, 아직도 처음 컨셉과 디자인을 핀업했을 때 네리후의 어리둥절한 반응을 잊을 수 없다… 로자나가 인테리어를 이렇게 하는건 세상에서 처음 본다며 혼란스러워하더니, 또 린던이랑 둘이 얘기하면서 이런 인테리어는 자기들도 살면서 처음 봐서 보다보니까 꽤 interesting한 것 같다고 계속 해보라고 했다.

기차 컨셉은 설국열차처럼 각 칸 마다 프로그램이 다르고, 시간에 따라 공간 구성이 계속 바뀔 수 있는 기차였다. 건축이면 그래도 꽤 많이들 하는 흔한 flexibility 컨셉인 것 같은데, 인테리어는 원래 그렇게 하면 안되는건지 아님 뭐 다른 문제였던건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큰 주제와 컨셉인 cultural tourism과 hybrid에 맞게 program hybrid로 어찌어찌 포장할 수 있었다. 워낙 작은 스케일까지 깊게 다룰 수 있었던 프로젝트라 가구 뿐만 아니라 조명과 손잡이, 심지어 찻잔이나 물컵까지 신나서 디자인하는 애들도 있었고, 네리후도 메인 프로젝트인 세번째 호텔을 하기전에 잠깐 쉬어 가는 프로젝트니까 즐기라고 했지만, 역시 나는 인테리어랑은 잘 안맞는 것 같다는 결론만 남기고, 그렇게 인테리어도 아니고 건축도 아닌 혼종인 프로젝트를 끝냈다.

train 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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