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네리후 스튜디오는 사이트가 중국이었는데, 스튜디오 주제는 cultural tourism으로, 네리후가 요즘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밀고 있는 토픽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다른 지역의 문화를 관광하는 경험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해석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스튜디오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고대 도시에 대한 tourism을 주로 다루게 되었다. 좀 과하게 중국이라는 컨텍스트와 문화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된 주제이긴 했지만, 네리후가 워낙 중국 건축의 아이덴티티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걸 자기들 practice의 정체성 중 하나로 삼고 있으니 스튜디오 주제가 중국인 것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프로젝트 스케줄은 매우 무지막지했지만 그래도 스튜디오 포맷 자체와 내용은 꽤나 흥미로웠는데, 한 학기가 총 세 가지의 연결된 프로젝트로 구성되었다. 첫 프로젝트는 상하이의 버려진 기차역을 각자 자신들이 상상하는 tourism을 위한 새로운 기차역으로 레노베이션하는 프로젝트였다. 두번째로는 그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하고, 마지막은 그 기차의 목적지인 고대 도시에 위치한 호텔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래도 나름 cultural tourism의 관점에서 보면 꽤나 짜임새있고 그럴듯해 보이는 구성이긴 했다. 처음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기차역에서의 경험에서부터 이어지는 기차 안에서의 과정, 그리고 도착한 여행지에서의 궁극적인 경험까지, tourism 과정 전체를 어떻게 건축적으로 디자인 할 수 있는지 정말 모든 것을 생각해야하는 매우 야심찬 스튜디오였다. 게다가 기차역부터 목적지까지의 여정이 예전 실크로드의 경로와 상당히 비슷해서, 문화적인 교류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 등 생각해볼만한 점이 많기도 했다.
사실 프로젝트를 한 학기에 3개를 한다는 건 코어가 아닌 옵션 스튜디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네리후도 자기들도 처음 해보는 포맷이라 학생들보다 자기들이 더 걱정된다고 했다. 네리후가 이번 스튜디오에서 기대했던 이상적인 그림은, 3개의 서로 다른 프로젝트들이 각자 자기가 상상하는 cultural tourism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면서도 하나의 큰 시나리오와 argument를 공유하는 그림이었다. 다만 역시 파이널은 파이널이라서, 처음 두 개의 프로젝트보다는 마지막의 호텔 프로젝트에 모두의 관심사가 집중되고 그만큼 중요해지는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처음 2개의 프로젝트가 마지막 프로젝트를 위한 빌드업과의 느낌으로 진행되게 되었다.
나는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보통 컨셉과 내러티브를 확실하게 정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공모전을 할때도 그랬고, 스튜디오에서도 그랬고, 항상 프로젝트 전체에 일관성있고 clear한 argument와 내러티브가 있는 프로젝트를 좋아한다. 그래서 주로 학기 초반에 컨셉을 정할 때 공을 가장 많이 들이고, 리딩과 리서치를 하면서 제일 시간 투자를 많이 한다. 특히 이번 스튜디오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테마와 스케일의 프로젝트가 따로 노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큰 컨셉과 내러티브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게 시작부터 가장 큰 challenge중 하나였어서, 학기초에 가장 에너지를 많이 쏟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다행히도 첫 주부터 엄청난 양의 리딩과 리서치를 하게 되어서, 컨셉을 정하는데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사실 이건 원래 네리후 수업에선 전혀 기대를 안했던 부분이지만, 오히려 평소에 하던 것 이상으로 심도 있게 리서치와 리딩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 4주는 로자나가 혼자 보스턴에 있으면서 수업을 이끌어갔는데, 역시 프린스턴 출신답게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생각하고 건축적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푸쉬했다. 아무래도 로자나가 아카데믹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다보니 초반의 리서치와 argument를 정하는 부분을 맡아서 하지 않았나 싶지만… 근데 워낙 자기가 똑똑하고 잘났다보니 멍청한 학생을 이해하진 못해서 그렇게 잘 이끌어주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얼마 안가 린던이 바로 합류하면서 진도가 쭉쭉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가져간 tourism의 컨셉은 hybrid 였는데, 첫 프로젝트의 사이트인 상하이의 역사적인 정체성에 대해 조사하면서 힌트를 얻었다. 동서양의 문화가 섞이며 전에 없던 상하이만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상이 hybrid라는 개념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cultural tourism, 여행의 과정 자체가 사람들의 기존 경험과,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경험이 섞이는 hybrid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네리후도 여행과 relevant한 주제로 잘 정한 것 같다길래 그때만해도 남은 학기가 순탄하게 잘 풀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