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 gsd (2)

2022.07 | cambridge

아무리 입시에서 포폴이 가장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포폴보다 훨씬 어려웠던 건 자소서였다. 사실 그동안 살면서 왜 유학을 가고싶은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적이 없었어서, 학교를 지원하는 구체적인 동기와 이유를 글로 쓰는게 가장 막막했다. 단순히 미국에 있는 유명한 좋은 학교들에 가고 싶은게 탈조선하고 유학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였는데, 그런 막연한 생각을 글로 써서 구체화 한다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 아무래도 뼛속까지 정시출신-조선인이라 그런지 입시는 그냥 학교랭킹 위에서 좋은순으로 가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싶었다. 근데 그렇다고 그걸 솔직하게 쓸 수는 없으니까… 물론 지금에야 gsd 스타일이 어떻고 mit는 어떻고 등등 학교별 특징을 대충은 알지만, 한국에서 그런 차이를 세세하게 알고 에세이에 녹여낸다는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난 오히려 포폴을 만들어가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감상과 더불어 에세이에 쓸 나만의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많이 얻었다. 이제까지 했던 프로젝트들을 쭉 모아놓고 각각의 컨셉을 정리하면서 돌아보니 나의 건축 스타일에 대한 몇가지 사실이 조금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이 상당히 큰 스케일을 다루고 있었다. 아예 마스터플랜처럼 스케일 자체가 큰 프로젝트도 있긴했지만, 그것보다 많은 프로젝트들의 내러티브가 항상 urban scale과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내러티브는 사회적, 도시적인 이슈나 컨텍스트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매우 작은 스케일의 디자인 intervention들이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들도, 사실 그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결론은 도시적인 비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한가지 깨달은 점은, 내가 생각보다 형태 자체를 디자인 하는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포폴에 그래도 꽤나 많은 프로젝트들이 들어갔는데 그중에 조형적인 디자인을 한 프로젝트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벨룩스나 졸전 같은 경우는 그냥 단순한 박스 형태의 디자인에 사회적인 내러티브가 가득 들어간 느낌이었고, 충정아파트나 청와대는 건축이 이미 현재 완성돼있으니 나는 살짝 비틀기만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 우아우스 같이 형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파빌리온조차도 스토리텔링에 올인했으니까…(그런걸 짓게 해줘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국현..)

이런 상황이다보니 서서히 march가 아닌 urban design을 1지망으로 해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urban design이 정확히 뭐하는건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태긴 했지만, 여러 학교 홈페이지들에서 urban design의 커리큘럼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니 확신이 점점 강해졌다. 특히 gsd maud의 프로그램 목표와 faculty들에 대해 리서치를 좀 해보니 그동안 항상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내 생각이나 철학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march는 워낙 여기저기 흔하니까 괜히 2년짜리의 post-professional degree라는 말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어차피 5년제 건축학과를 졸업한 내가 지원할 수 있는 학교 프로그램은 대부분 다 실무 경력을 권장하고 있었는데, 특히 maud는 대놓고 일을 안하고 오면 안뽑겠다고 써 있어서 괜히 더 도전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어플라이를 한 달 정도 남겨 놓았을 쯤, 프린스턴이나 예일같이 urban design 프로그램이 아예 없는 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urban design으로 지원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딱히 학교별로 포폴에 넣은 프로젝트들이나 레이아웃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에세이는 다 도시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에 대해 솔직하게 썼다. 지금에야 뭐 그렇게 학교들을 많이 지원해야했나 싶은데 학원에서 하도 겁을 줘서 별 관심없던 학교들까지 총 7개의 학교로 후보를 정했다. 그렇게 어느덧 12월이 끝나가고 슬슬 어플라이가 코앞까지 다가오니 포폴과 자소서, 추천서까지 유학에 필요한 것들이 모두 어느정도 틀이 잡혔다. 사실 틀이 잡혔다기보다 마감시간이 강제로 만들어줬다는 표현이 맞겠다. 역시 마감이 결정해주고 이끌어주고 해방시켜주는 건축 인생이란…

추천서는 교수님들이 학교별로 다 따로 하나하나 써주셔야 되니 내가 생각해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서 참 말씀드리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워낙 내가 몇년전부터 유학 간다고 빌드업을 해왔었고 수업 때도 항상 충성했어서ㅎㅎ 다들 흔쾌히 써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물론 조선인답게 부탁할 때 홍삼 드리는 건 잊지 않았다🌝) 우선 가장 먼저 내가 들었던 스튜디오 교수님들과 인턴한 곳 소장님 중에 gsd 출신인 분들, 그리고 졸설교수님과 학과장님께 부탁드렸는데, 특히 gsd랑 예일은 추천서를 쓰는 사람이 학교 alumni 인지 체크하는 항목이 있어서 더욱 더 그런걸 신경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입시 준비를 슬슬 마무리 해가던, 2018년 연말 겨울은 아직도 기억이 참 생생하다. 워낙 불안해하는 내 성격 탓에 데드라인 한 3일에서 5일정도 일찍 자체적으로 포폴 마감을 했었는데, 12월31일에 mit 어플라이를 하면서 gsd나 예일, 다른 학교까지 다 더이상 수정하지 않고 제출해버렸다. 그러고나선 이렇게 끝나도 되는건가..? 싶어서 약간 허무하기도 하고 뒤숭숭 하기도해서 잠도 못자고 계속 붕 떠있는 상태로 남은 겨울을 보냈다. 졸업 설계부터 몇개월동안 쉬지않고 각성상태로 살아와서 일이 없는게 어색하기도 했고… 그러다 그 불안감과 허무함을 못이겨서 교수님 사무실에서 인턴을 했는데 그냥 놀껄 아직도 참으로 후회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ㅎㅎ

그리고…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길고 길었던 2개월을 기다렸다.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새벽에 오는 진동하나, 문자 하나 이메일 하나에 바로바로 폰을 확인하면서 기다리면서 참 불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매일 같이 gradcafe나 고해커스에 들어가면서 다른 지원자들 인터뷰 소식 파악을 하고, 점점 삶이 피폐해지던 2월말쯤에 가장 먼저 코넬에서 합격 이메일이 왔다. 그리고 얼마 후 3월이 넘어가는 새벽 gsd와 예일에서 연락이 왔고 곧 이어 유펜 컬럼비아, 마지막으로 mit에서도 이메일이 왔다. 지원한 7개 학교 중에서 정말 운좋게도 프린스턴을 빼고는 다 어드미션을 받았고, 그렇게 3학년 때부터 거의 4년에 걸친, 그 간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힘들었던 장대한 유학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mit를 끝으로 지원한 7개 학교의 결과가 다 나왔지만, 솔직히 오랜 기간 동안 유일한 목표였던 gsd로 곧바로 마음이 기울긴 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절박하게 바랐던 목표였고 결과였어서 더욱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mit는 어드미션 결과를 들으니 마음이 좀 흔들렸다. 워낙 매년 몇 명 뽑지도 않고 나는 smarchs가 선호하는 실무 경력도 없었으니 어플라이할 때 큰 기대가 없었었다. 그래서 mit와 gsd를 졸업하신 교수님 선배님들 여기저기에서 조언을 구했는데, 대부분이 강력하게 고민없이 gsd로 가라고 하셔서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고대에서 예전에 들었던 스튜디오 교수님 중에 mit 졸업하신 분이 정말 너무 싫었어서 결정에 좀 도움이 되었다😉 

3월부터는 그동안 못쳤던 테니스도 다시 열심히 치고 몇년만에 찾아온,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면서 출국 전까지 남은 시간을 보냈다. 좀 아쉬운건 4년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다보니 아무것도 안하고 쉬는게 너무 어색하고 불안해서, 그 와중에 또 공모전을 찾아서 하고 이것저것 시험공부를 했다…(예전부터 이렇게 가만히 잘 쉬지를 못하는 성격을 고치고 싶었는데 아직도 잘 안된다🥲) 그래도 그렇게 여기저기 할 일을 찾아다니다가 운좋게 외부장학금도 받게 되어서 다행히 학비 부담도 좀 덜 수 있었다. 살면서 공식적인 첫 탈조선이었으니 걱정반 설렘반 기대반으로 지내다가 보스턴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일본이든 중국이든 아시아 여행을 못 다닌게 참 아쉽긴 하다.

그리고 2019년 8월, 학교 뽕에 가득 취한 상태로 보스턴에 도착했다. 사실 너무나 오랫동안 갈망했던 gsd였고 미국 유학 생활이었어서, 개강 전부터 모든게 마냥 꿈만 같고 좋았다. 예전부터 부럽기만 했었던 이쁜 학교 로고와 (비 오면 물 새는) gund hall도, 하버드가 박힌 학교 이메일 주소가 생긴 것도 좋았고, 인터넷이나 책으로만 보던 교수님들이 살아 움직이는걸 직관하니 뽕이 안 차오를 수가 없긴 했다. 첫 주에 gsd의 시그니쳐인 옵션 스튜디오 프레젠테이션을 봤을 때는 정말 괜히 gsd가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그 첫 해 스튜디오 교수 라인업이 쫌 역대급으로 좋긴 했다…) 특히 유학 준비하던 시절 인스타에서 작업을 많이 참고하고 염탐했던 롤모델 같던 사람들을 신환회에서 실제로 만나게 되고 같이 술 마실 때는 연예인들 보는거 같아서 좀 신기하기도하고 gsd에 왔다는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첫 학기인 urban design 코어는 스케줄 자체가 워낙 빡세기도 했지만, 정말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템포의 커리큘럼이었다. 아무런 다른 생각을 할 틈과 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첫 학기는 적응하느라 정말 정신 없이 질질 끌려다니면서 학교를 다녔다. 특히 코어 스튜디오는 한 학기에 프로젝트를 3개를 해야해서 정말 거의 일주일 단위로 중간마감과 마감이 있었다. 시간이 애초에 없는 스케줄이다보니 최소한의 프로덕션을 하면서 최대한의 아이디어를 간결하게 전달했어야했는데, 공모전을 하던 버릇 + 아시안 특유의 매테리얼을 다 쥐어짜서 때려박는 (프로덕션 양으로 승부하는) 스타일 때문에 똑똑하고 우아하게 프로젝트 마감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아 좀 아쉬움이 남는다. 대개 파이널 리뷰나 크리틱 전 날 미국애들은 다 저녁 전에 칼퇴하고, 아시아 애들만 한국마냥 밤새서 프로덕션 하는걸 보면, 참 숨길 수 없는 문화적 차이 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한국에 있었을 때부터 항상 미국이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파이널 리뷰 때 게스트크리틱들이 우르르와서 앞에 쭉 앉아있는 풍경이었는데, 첫 리뷰부터 게스트들이 열명씩와서 내심 또 뽕에 취했다. 

스튜디오도 스튜디오지만 다른 세미나 수업들에서도 쏟아지는 리딩의 양과 과제 자체가 말도 안되는 수준이었는데, 원래 제대로 된 대학교육이 이래야 했던건가 싶어서 좀 혼란스러웠다. 수능 볼 때도 그렇고 gre 준비할 때도 그렇고 살면서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리딩을 해본적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나중엔 귀찮아서 그냥 abstract나 introduction만 읽고 토론하고 글 써가긴 했다ㅎ) 그래도 꽤 만족스러웠던 건 스튜디오 이외의 수업들의 퀄리티가 한국보다 훨씬 좋았다는 것이었다. 출튀 걸리지만 않고 그냥 리포트만 제 때 잘내고 시험 보면 에이쁠 나오는 한국 수업과 다르게 정말 고등교육다운 수업이라고 해야할까.. 사실 한국에서 들었던 전공 이론이나 세미나들은 제대로 된 수업이 거의 없었고 고일대로 고여버린 npc들이 매년 똑같은 슬라이드와 말을 반복하다시피 했었는데, gsd는 스튜디오 말고도 흥미롭고 유익한 세미나 수업들이 꽤나 있어서 정말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gsd와서 특히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학교에 그냥 랜덤인 것이 전혀 없고 모든 세팅이 정교하게 의도적으로 큐레이팅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학교와 교수들이 스튜디오를 비롯한 수업 커리큘럼에 매우 깊게 관여하고 또 굉장히 세세하게 스튜디오의 모든 걸 컨트롤하고 있었다. 내가 워낙 학풍이 탈건축인 학부에 있다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 학교와 교수님들에게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좀 많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내 첫 학기는 urban design 코어였어서 이런 컨트롤이 더욱 강한 편이긴 했는데, 아무래도 코어는 학교의 교육 철학이 담긴, 학교에서 신경써서 관리하는 프로그램의 대표 수업이다보니 세세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다 컨트롤하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면 학기 시작도 전에 교수들이 학생들의 포폴을 바탕으로 각자에게 알맞는 스튜디오 교수를 미리 다 정해놓았었고, 심지어 팀플 멤버까지 다 미리 정해져 있었다. 몇몇 교수들은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이 앉는 자리까지도 지정해 놓기도했다. 스튜디오 수업 때도 마찬가지로 과제나 deliverable이 엄청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파이널 리뷰 때는 모든 팀들이 같은 사이즈의 보드를 채워야 했는데 (물론 나대는 애들은 말안듣긴 하지만), 보드에 들어가야하는 이미지의 내용과 크기까지 하나하나 다 정해져있었다. 그리고 발표하는 순서와 포맷도 철저하게 교수들이 직접 하나하나 지정해주게 되었다. 

좋게 생각하면 그만큼 학생들이 제대로 학교의 색깔을 흡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지만, 그래도 학부도 아니고 대학원인데 그렇게 고등학생 다루듯 해야하나 싶기도 했다. 건축적인 표현이나 디자인 자유도가 그만큼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기도 했고… 특히나 maud는 실무경력이 몇년 이상 되는 애들이 많은데도 그렇게 다들 brain wash 되면서 모두가 다같이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인걸 보면 그만큼 교육 효과는 확실하긴 한 것 같았다. 물론 코어학기가 끝나고 옵션 학기부터는 완전한 자유방임주의니까 나름 구속과 자유가 적절히 조화되긴 했다…

미국 생활 자체가 처음이다보니 미국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미국 학교와 그 교육방식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아마도 그 중 제일 어려웠던 것은 역시 언어적인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수업 중에도 교수들이 쉬지 않고 질문하고 말을 걸어서 항상 멍때리지 못하고 긴장한 상태로 수업을 들어야만 했고, 워낙 모든 과제가 팀플이 많았어서 끊임없이 다른 애들이랑 대화하면서 프로젝트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미국 애들은 다 자기 의견도 상당히 강하고 말이 빠르다보니까 그 템포를 따라가면서 반박하고 토론하는게 꽤나 어려웠는데, 특히 실무 짬이 좀 되는 애들이 쏘아 붙일 때는 괜히 내가 모르는 부분인가 싶어서 움찔한 적도 있었다. 하루가 끝나고 잠들기 전 침대에서 팀플 때 못한 말이 생각나서 부들부들 한적도 많았고…ㅎㅎ 사실 지나고보면 다들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그냥 목소리만 큰 애들이었는데 말이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졸업설계 지도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쫄지마라’ 였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서 그게 참 아쉽다. 그래도 휴학 후 인턴을 1년 하고 돌아온 후에는 좀 심적으로 여유가 생겼는지 훨씬 더 편하게 즐기면서 학교를 다녔고, 후회 없이 졸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입학부터 졸업까지 약 3년 동안의 gsd 시절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되어버렸다. 그전까지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던 나에게 미국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고, 이 3년은 내가 단순히 건축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정말 많이 성장할 수 있던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학부 때 유학 준비 할 땐 하버드만 가면 건축인생 다 풀리겠구나..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그건 정말 고생길의 시작에 불과했었다. 당장 학교에서 살아남는 것부터 인턴-졸업-취업까지 뭐 하나 더 쉬운 일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gsd만큼 무언가를 절박하게 바랐던 적이 없었기에(전역 제외…), 학교를 다닐 땐 예전부터 기대하고 꿈꿔오던 삶 속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참 행복하고 낭만 가득했던 3년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동안 하도 여기저기서 나대면서 살았어서 그런지, 한국을 떠나온 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건축 관련 연락이 종종 오곤 한다. 학교 후배들 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 외국인들까지도 특히 대학원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는데, 난 그때마다 항상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가라고 추천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대학원을 졸업한다고 갑자기 건축 고수가 되거나 디자인을 잘하게 되는건 정말 절대절대 아니다. 오히려 gsd에서 배웠던 건 건축이나 디자인이라기보다 내 생각을 말하고 설득시키는 법이나 프레젠테이션 하는 법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예전보다 내 시야가 훨씬 더 확장되었고, 또 gsd 이후에 내 건축 세계가 완전히 바뀐건 분명했다. 무엇보다 한국에 있었으면 절대 몰랐을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었고, 그 세상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 항상 감사하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에서의 이 3년이,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에도 인생의 황금기로 기억되기를 빌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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