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자체가 처음이다보니 미국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미국 학교와 그 교육방식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아마도 그 중 제일 어려웠던 것은 역시 언어적인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수업 중에도 교수들이 쉬지 않고 질문하고 말을 걸어서 항상 멍때리지 못하고 긴장한 상태로 수업을 들어야만 했고, 워낙 모든 과제가 팀플이 많았어서 끊임없이 다른 애들이랑 대화하면서 프로젝트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미국 애들은 다 자기 의견도 상당히 강하고 말이 빠르다보니까 그 템포를 따라가면서 반박하고 토론하는게 꽤나 어려웠는데, 특히 실무 짬이 좀 되는 애들이 쏘아 붙일 때는 괜히 내가 모르는 부분인가 싶어서 움찔한 적도 있었다. 하루가 끝나고 잠들기 전 침대에서 팀플 때 못한 말이 생각나서 부들부들 한적도 많았고…ㅎㅎ 사실 지나고보면 다들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그냥 목소리만 큰 애들이었는데 말이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졸업설계 지도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쫄지마라’ 였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서 그게 참 아쉽다. 그래도 휴학 후 인턴을 1년 하고 돌아온 후에는 좀 심적으로 여유가 생겼는지 훨씬 더 편하게 즐기면서 학교를 다녔고, 후회 없이 졸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입학부터 졸업까지 약 3년 동안의 gsd 시절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되어버렸다. 그전까지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던 나에게 미국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고, 이 3년은 내가 단순히 건축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정말 많이 성장할 수 있던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학부 때 유학 준비 할 땐 하버드만 가면 건축인생 다 풀리겠구나..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그건 정말 고생길의 시작에 불과했었다. 당장 학교에서 살아남는 것부터 인턴-졸업-취업까지 뭐 하나 더 쉬운 일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gsd만큼 무언가를 절박하게 바랐던 적이 없었기에(전역 제외…), 학교를 다닐 땐 예전부터 기대하고 꿈꿔오던 삶 속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참 행복하고 낭만 가득했던 3년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동안 하도 여기저기서 나대면서 살았어서 그런지, 한국을 떠나온 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건축 관련 연락이 종종 오곤 한다. 학교 후배들 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 외국인들까지도 특히 대학원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는데, 난 그때마다 항상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가라고 추천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대학원을 졸업한다고 갑자기 건축 고수가 되거나 디자인을 잘하게 되는건 정말 절대절대 아니다. 오히려 gsd에서 배웠던 건 건축이나 디자인이라기보다 내 생각을 말하고 설득시키는 법이나 프레젠테이션 하는 법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예전보다 내 시야가 훨씬 더 확장되었고, 또 gsd 이후에 내 건축 세계가 완전히 바뀐건 분명했다. 무엇보다 한국에 있었으면 절대 몰랐을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었고, 그 세상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 항상 감사하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에서의 이 3년이,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에도 인생의 황금기로 기억되기를 빌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