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 학부들에서는 건축과 urban design이 매우 애매하게 섞여 있는 채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엥간한 학교들의 건축학과를 보면 urbanism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님들이 한두분씩 꼭 있긴 하지만, 학부 설계 스튜디오에서 다루는 urban design 프로젝트들을 보면 그냥 스케일만 큰데 urban design 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시설계나 계획을 담당하는 교수님들이 이론이나 역사 수업만 하시고 디자인 스튜디오는 티칭 안하시는 분들이 많기도 하고... 그나마 대학원의 연구실 레벨로 가야 도시설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들이 좀 있는 것 같았다.
내 학부시절 때 경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고대건축은 한국 도시설계 분야에선 꽤나 유명하고 권위 있으신 세드래곤 교수님이 계신데, 하필 내가 학교 다닐 땐 학교에 안계셔서 수업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학부 때 내가 처음 urban scale이라고 할만한 프로젝트를 해본건 3-1 스튜디오였는데, 이것도 사실 말만 urban design이었지 진짜 도시적인 argument나 프로세스는 전혀 아니었다. 교수님들이 도시 관련 분야를 전공하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소에 urbanism에 관심이 있으신 것도 아니고, 그냥 학교 커리큘럼 (+인증) 때문에 떠밀려서 가르치시는 딱 그런 느낌의 스튜디오였다. 지나고보면 그냥 스케일만 큰 건축 프로젝트였달까… 아마 대부분의 한국 학교에서 도시설계나 단지설계를 다루는 많은 스튜디오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신기한 점은, 정말 많은 한국 학생들이 건축 프로젝트를 할 때 내러티브에서 99프로는 다 도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다. 단순히 고대 뿐만 아니라 어느 학교, 어느 학년, 어느 스튜디오를 가도 urban forest던 village던 farm이던, 제목에 urban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컨셉에 사회적 이슈를 가져와서 내러티브를 짜고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사실 이건 단순히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한국의 여러 교수님들이나 건축가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긴하다. 모 건축호소인 유튜버만 봐도 항상 뇌피셜로 도시에 대해 얘기하고 도시 책을 쓰는걸 보면… urban design이 그래도 역시 참 만만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분야긴 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만큼 모호한 분야이기도 하고...
좀 더 넓게보면 이건 비단 한국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고, urban design이라는 분야가 국내 건축 산업 전반에 제도적, 문화적으로 아직 자리잡기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건축가가 아니라 전문적인 urban designer들이나 planner들이 하는 일을 한국에서는 아직도 공무원들이 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의 대부분의 지자체가 그렇다) 그래도 요즘은 총괄건축가 제도가 여러 도시에서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그런 자리 마저도 대부분 건축가들이 겸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애초에 urban design이라는 세부 분야 자체가 건축에서 뻗어나와서 학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독자적인 전공으로 만들어진지도 아직 반 세기밖에 안지났으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도 나는 운좋게도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한국에서 쫌 제대로 틀이 잡힌 전문적인 urban design을 접할 수 있었다. 좋은건지 안좋은건지 모르겠지만 고대에서 내가 수업들은 교수님들 중 gsd 출신인 분들은 다 urbanism 전공 밖에 없었다. (이것도 아마 세드래곤 영향이 아니었을까...) 학교 다니면서 한 네다섯분의 gsd 졸업하신 교수님들 수업을 들었던 것 같은데, 놀랍게도 그중에 march가 한분도 안계셨고 모두 maud나 mup, mla 등등 다른 전공이셨다. 아무래도 다들 비슷한 시선으로 건축과 도시를 바라보시다보니, 학부시절부터 urban design을 좀 더 깊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urban design적 관점은 내 건축 성향이나 스타일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기도 하다.
특히 3-2와 4-1 설계는 모두 gsd 출신 교수님들의 정석적인 urban design 스튜디오였는데, 두 학기 모두 정말 현실에서 가장 많이 있을 법한, 딱 회사에서 많이 할 것 같은 스타일의 프로젝트를 하는 스튜디오였다. 교수님들이 다 대형 회사 출신이셔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제대로 된 마스터플랜을 처음 해보다보니 정말 고생했는데, 그 중에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그동안 안해봤던 스케일을 다루는 일이었다. 스케일에 대한 감이 없으니 사이트에 들어가는 이 많은 건물들을 어떻게 다 컨트롤하고 언제 다 디자인 해야하는지 참 막막했다. 그렇게 우리가 헤멜때마다, 당시 3-2 교수님도, 4-1 교수님도 정말 수업 때 끊임없이 계속해서 말씀하셨던 내용 중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바로 ‘어차피 그렇게 안짓는다.. 그러니까 그렇게 다 고민하면서 건물 디자인은 열심히 안해도 된다' 였다. 근데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있던 다른 사람들 역시 아무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건축학과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설계 스튜디오 수업인데 디자인을 열심히 하지 말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게 두 학기 모두 계속 헤메다가 이도저도 아닌 프로젝트를 하면서 혼란만 남긴 채 지나갔다.
‘어차피 이렇게 안지을꺼다’라는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건 그때부터 5년이 지난 후 gsd에 와서 였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 말이 urban design과 건축의 차이를 가장 핵심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걸 그때 미리 깨달았더라면 그렇게 고생안하고 즐기면서 훨씬 좋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걸 보면 maud가 괜히 학부 때 건축전공을 한 사람들만 지원할 수 있는 post professional degree 인게 아니구나 싶었다. 물론 나야 별 생각없이 maud에 지원한거긴하지만.. 그래도 gsd는 한국에서 이전까지 정말 겉핥기식으로만 urban design을 경험했었던 나에게, urban design의 존재 이유와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알려준 곳이었다.
그렇게 gsd maud에서 보낸 총 3년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좋은 순간도, 싫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maud는 이제는 내가 미워할래도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의 전공이 되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해준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이젠 어디가서 내 자신을 당당히 urban designer라고 나를 소개하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