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d + urban design (2)

2022.08 | new york

놀랍게도 gsd는 미국에서, 그리고 전세계에서 최초로 urban design이 독자적인 프로그램과 전공으로 만들어진 학교이다. 워낙 urban design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들 자체가 미국에 드물기도 하지만, 그래도 gsd maud는 urban design의 선두주자로서 나름 근본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조금은 남아있는 듯 했다. 그래서 그만큼 urban design이라는 개념이 60년전 처음 태동하던 그 시기에 건축가들 사이에서 논의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자료들이 학교에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실무적인 urban design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관점에서의 urbanism에 대한 내용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지금은 점점 정원이 줄고 있지만 내가 입학했을 때의 maud에는 한 학년에 40명 정도 있었다. 한국인은 나까지 세명이었고, 아시안들 중에서는 중국인들이 꽤나 많았다. 다만 요즘 들어서는 정치적 이유인지 다른 이유인지 중국인들은 거의 안뽑는 추세인 것 같긴 하다. (물론 개인적으론 매우 옳게 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ㅎㅎ) 그래도 가기 전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같이 들어온 애들이 전부 다 실무 경력이 많지는 않았다. 나처럼 학부 졸업하고 바로 온 애들은 반 조금 안되는 것 같았는데, 일부러 신입생 중 비율을 그렇게 조정해서 뽑는 것 같긴 했다. march2도 그렇지만 maud는 post professional degree 이다보니 프로그램 목적 자체가 건축을 실무적으로도 어느정도 이미 아는 사람들을 위하는 느낌이 좀 있는데, 그래도 갓 졸업한 학생들이 가져다주는 fresh한 아이디어들이 있을 때도 있으니까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이것도 요즘은 점점 실무 경력이 있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 인 것 같긴 하지만...

아직도 학교 도서관에 남아있는 gsd maud의 1963년 코어 스튜디오 리포트. 그리고 당시 코어 교수는 후미히코 마키였다😮

maud는 첫 학기가 코어 학기라서 모든 신입생들이 정해진 커리큘럼을 듣게 되어 있다. 코어 학기는 한국으로 치면 다 전필로만 구성된 학기인데,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다른 3개의 이론 세미나도 모두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교수의 수업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보통 코어 학기는 학교의 교육 철학이 가장 잘 녹아있고 또 가장 잘 드러나는 학기라서, 그만큼 학교와 교수들이 학생들한테 신경쓰는 정도도 다르고 수업 커리큘럼 큐레이팅도 매우 정교하게 되어있다. 뭔가 학교가 밀어주는 간판 프로그램이자 학기같은 느낌이랄까... march, maud, mla 등등 전공에 상관없이 코어 학기들은 모두 그렇다.

정식 코어 학기 시작은 9월이지만, maud는 공식적인 가을 첫 학기 시작 전에 모든 신입생들이 프리텀 워크샵이라고 불리는, 2주-3주 정도의 짧은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작은 매핑 프로젝트 하나를 팀플로 하면서 gis도 살짝 배우고 urbanism에 대한 리딩도 좀 하는 수업인데, 한국으로 치면 계절학기처럼 시간강사 같은 lecturer가 수업을 하고 첫 해를 막 끝마친 재학생들 몇명이 ta를 했다. maud는 신입생들이 모두 건축 전공자들이기도 하고 또 다들 실무경력도 꽤 많았는데도, 워낙에 urban design이 구체적으로 뭘 하는건지는 좀 애매한 느낌이 있다보니 그동안 건축가들의 관점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환기시켜주는게 목적인 introduction 수업이었다. 진짜 풀타임 교수들은 마지막날 파이널 리뷰에만 왔으니 정식 수업은 아니었어도, urban design에 대한 꽤나 흥미로운 내용들과 시각들을 접할 수 있었던 프리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프로젝트를 열심히 해야하나 했던 수업이긴 한데, 아무래도 미국와서 처음으로 하는 프로젝트이고 애들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감이 안와서 정말 공모전 마감하듯 잠도 안자면서 열심히 했다... 아직도 후회막심인 것..🥲

preterm

그렇게 정신없이 짧은 프리텀이 끝나고 곧바로 쉴 틈도 없이 정식으로 학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 학교에 입학한 2019년은 dean이 mohsen에서 sarah로 처음 바뀐 해였고, urban design 프로그램의 chair도 rahul로 바뀐지 1년 밖에 안됐을 때 였다. 보통 gsd 프로그램들의 커리큘럼은 워낙 딘이랑 체어의 입김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 편이라서 그런지, 전체적인 학교 분위기가 안팎으로 꽤나 어수선했다. 게다가 maud는 라훌이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성향을 완전히 새롭게 restructure하는 과정 중에 있어서 더욱 그랬다. maud 코어 커리큘럼 또한 뭔가 아직 확실히 자리잡지 못한 느낌이었다. 스튜디오에서 항상 해왔던 프로젝트 사이트도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새로 바뀌게 되었고, 또 필수로 들어야하는 세미나 수업들과 교수진도 새로 개편되는 등 한창 과도기였다. 그래서 내가 다닐 때도 교수들이 학생들 피드백을 중간중간에 계속 받으면서 커리큘럼을 계속 수정하고 프로그램을 점점 다듬어 갔다.

지금은 버지니아대학교의 딘으로 가버린 felipe가 몇년 전 maud 체어로 있을 때는 그래도 urban design의 ‘디자인’적 성향이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예전 코어 스튜디오 작업들을 보면 urban block의 타이폴로지에 대한 스터디도 많이 하고 도시 속의 형태적 디자인에 대한 고민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라훌이 체어가 된 이후에는 완전히 공공적, 사회적 성격의 urbanism이 maud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이 되었다. 이런 디자인의 공공적인 역할은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부분이긴하지만, 워낙 라훌이 그런 쪽의 전문가이기도하고 또 요즘 어느 분야에서나 핫한 주제니까 그럴만도 하겠다 싶었다. 사실 나도 어플라이할 때 에세이에 라훌의 urbanism을 찬양하는 글을 썼었어서 크게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나랑 잘맞는 부분이기도 했고…

그래도 라훌시대의 maud 코어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틀은 예전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첫 코어 학기의 전체적인 수업 구조는 크게 두 갈래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나가 마스터플랜과 같이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practical한 urban design의 기본적인 접근 방법과 디자인을 배우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urban design의 역사와 이론을 비롯해 urban design의 사회적, 공공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보다 학문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urban design은 주로 스튜디오에서 한 학기 동안 총 2+1개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루게 되었고, 학문적인 부분의 urban design은 역사와 이론 등등 여러 세미나 수업들에서 리딩과 글쓰기, 토론을 쉬지않고 하면서 집중적으로 배웠다.

코어 스튜디오는 각각 10명 정도씩 총 4개의 작은 분반으로 나눠지게 되었다. 각 섹션을 담당하는 4명의 교수들 중엔 풀타임 교수도 있었고 그냥 잠시 학교 놀러오는 듯한 방문교수들도 있었는데, 나는 당시 gsd에서 ddes를 하고있던 yun fu의 반에 배정되었다. (놀랍게도 yun은 maud가 아닌 march 졸업생이었는데, maud 코어를 가르치는게 신기해서 어쩐일이냐고 물어보니까 gsd의 전신인 바우하우스의 정신에 따라 여기선 전공 상관없이 모든 걸 가르친다는 상당히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그래도 역시 박사 과정 중인 사람에게 무려 '코어' 스튜디오를 맡기는게 학교도 불안했는지 peter rowe라는 오래된..교수가 항상 크리틱 때 같이 들어오게 되었다. 겉에서 보기엔 매우 막무가내에 제멋대로인 백인 할아버지이지만(사실 그렇긴하다) 예전에 gsd 딘으로 오래있었고 이것저것 아는 것도 정말 많은 좀 신기한 유형의 교수님이셨다. 특히 동아시아나 한국의 건축과 도시에 관심이 매우 많고 또 관련 책도 많이 썼어서 한국 도시에 대해 내가 몰랐던 사실들도 많이 배웠다.

gsd에서 스튜디오를 들으면서 한 가지 신기했던 건 스튜디오 분반이 한국처럼 수강신청으로 이루어지지않고 교수들이 미리 정해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다소 강압적인 배정은 뭔가 고등학교 때나 군대 자대배치 같아서 좀 오랜만이라 약간 의아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gsd에서의 이 코어 스튜디오 배정은 절대 랜덤이 아니고, 교수들이 포트폴리오와 프리텀 프로젝트 등등 여러 부분을 굉장히 종합적으로 신경써서 나오는 결과물이라고 한다. 완전 랜덤이라고 하는 스튜디오 로터리조차 사실 랜덤이 아니라니까 놀랄 일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매우 불투명하고 정치적인 학교인 것..)

내가 배정된 yun의 섹션은 4개의 반 중에 가장 적은 인원이었는데, 대체로 실무경력이 많은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굉장히 자기 색깔이 강하고 학교에서 하고 싶은 디자인이 뚜렷한(대학원에 온 이유가 명확한) 애들이 많았다. 이건 뇌피셜이지만 아무래도 yun의 티칭 경력이 많지가 않다보니까 그래도 주관이 좀 강한 애들로 붙여준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왜 일도 안하고 바로 대학원으로 온 나를 여기 넣었지.. 곰곰히 생각했었는데, 아마 내 포폴에서 보이는 나의 디자인 색깔과 성향이 좀 극단적으로 강하고 뚜렷해서 그러지 않았나싶다. 실제로 yun은 굉장히 자유방임주의적이고 정말 그냥 편하게 수다떠는 것 같은 크리틱을 위주로 수업을 해서, 우리 반 애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긴 했다. 물론 그동안 학부 때 스튜디오에서 교수님들이 하라는대로 충성하고 따라다녔었던 나에겐 참 쉽지 않은 크리틱과 스튜디오였지만🥲

with yun fu

스튜디오는 크게 두 가지의 프로젝트로 구성되었다. 둘 다 모두 사이트가 보스턴이었는데, 두 프로젝트의 주제는 살짝 달랐지만 딱 일반적인 urban design 프로젝트 같은 스케일의 사이트였다. 컨텍스트도 별다른 특징은 없는 흔한 밋밋한 느낌이었다. 요구되는 프로그램도 상당히 전형적이었는데, 역시 하우징과 오픈스페이스는 urban design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니까 필수적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각자의 내러티브에 따라 프로그램을 추가로 제안할 수 있었다.

첫 프로젝트는 보스턴 시내의 바다 근처에 있는 버려진 산업 부지를 주거 단지로 재탄생 시키는 프로젝트였다. gsd 코어는 스튜디오 분반 뿐만 아니라 같이 프로젝트 하는 팀원까지 (+심지어 앉는 자리까지) 지정해주게 되는데, 교수들이 무슨 기준으로 큐레이팅 한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미국인 팀메이트와 첫 코어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되었다. 군대 이후 미국인과 같이 일해보는 건 처음이었어서 상당히 스트레스 받고 긴장한 상태로 팀플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지나고 돌아보면 굳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했었나 싶지만, 그땐 진짜 언어에 대한 압박감도 엄청 컸어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팀메이트의 레프레젠테이션과 그래픽, 그리고 디자인 프로세스가 그동안 한국에서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이어서, 오히려 팀메이트를 보면서 정말 많이 배우기도 했다. 예전에 학부 때 교수님께서 한국학생들은 항상 똑같은 것만 보고 따라해서 팔레트도 다들 비슷비슷하고 프로젝트도 다 비슷해보인다고 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사실 나 자신만해도 gsd 오기 전과 후에 팔레트가 완전히 바뀌었으니, 정말 알게모르게 주변 환경에서 받는 영향이 크긴 큰가보다.

첫 프로젝트가 끝난 후 교수들이 학생들과 그동안의 커리큘럼에 대한 짧은 피드백 세션을 가졌다. 대부분 학생들의 피드백들이 스케줄이 너무 빡세다는 푸념 섞인 불평이었지만, 교수들은 '작년에는 더 빡셌는데 너네 많이 편해진거다.'라는 마치 조선인 같은 답변을 남기며 별다른 변화없이 그냥저냥 지나가게 되었다. 그래도 한가지 새로 바뀐 점이 있었는데, 바로 두번째 프로젝트의 팀메이트를 직접 정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고, 그 순간부터 바로 반 애들끼리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쉽게도 학기 시작부터 계속 같이 팀플하고 싶었던 일본인 친구에게 우물쭈물하면서 물어보지도 못하다가...나한테 먼저 같이 하자고 한 중국 친구와 어쩌다보니 같이 팀플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일본 친구도 원래 나랑 같이 하고 싶었다는 말을 듣고 내 짝사랑의 끝은 역시 비극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곧바로 시작한 두번째 프로젝트 역시 보스턴의 남쪽 교외 지역에 마스터플랜을 하는 프로젝트였다. 사이트는 20세기에 성행했다가 지금은 쇠퇴한 미 동부의 테크밸리라는 나름의 고유한 특징이 있었지만 이 역시 미국미국한 컨텍스트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나에겐 그닥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물론 테크밸리라는 컨텍스트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어서 테크 오피스와 주거가 혼합된 캠퍼스를 디자인하게 되었다. 약간 oma의 라빌레뜨 같이 이론적인 상상을 조금 곁들인 마스터플랜이었는데, 지루하긴 하지만 나름 적당히 아카데믹하고 적당히 practical한 결과물이 나왔다. 특히 마스터플랜에서 주거와 오피스 건물, 오픈 스페이스들의 스케일에 대한 감각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스튜디오에서 한 학기 동안 했던 두 프로젝트 모두 시간도 부족했고 사이트 컨텍스트도 그저그래서 아카데믹한 argument를 펼치기엔 좀 애매했지만, 그래도 가장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urban design 프로세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작은 건축 디테일에 신경 쓰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리면서, 큰 스케일을 다루는 법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오랜만에 디테일이나 구조는 생각안하고 인셉션 마냥 매싱을 마구 찍어내면서 행복 설계를 했다..) 사실 urban designer가 가져야 할 필수적인 능력 중에 하나가 큰 스케일을 작게 쪼갤 수 있는 디자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두 개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크고 작은 스케일에 대한 감각의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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