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는 크게 두 가지의 프로젝트로 구성되었다. 둘 다 모두 사이트가 보스턴이었는데, 두 프로젝트의 주제는 살짝 달랐지만 딱 일반적인 urban design 프로젝트 같은 스케일의 사이트였다. 컨텍스트도 별다른 특징은 없는 흔한 밋밋한 느낌이었다. 요구되는 프로그램도 상당히 전형적이었는데, 역시 하우징과 오픈스페이스는 urban design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니까 필수적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각자의 내러티브에 따라 프로그램을 추가로 제안할 수 있었다.
첫 프로젝트는 보스턴 시내의 바다 근처에 있는 버려진 산업 부지를 주거 단지로 재탄생 시키는 프로젝트였다. gsd 코어는 스튜디오 분반 뿐만 아니라 같이 프로젝트 하는 팀원까지 (+심지어 앉는 자리까지) 지정해주게 되는데, 교수들이 무슨 기준으로 큐레이팅 한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미국인 팀메이트와 첫 코어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되었다. 군대 이후 미국인과 같이 일해보는 건 처음이었어서 상당히 스트레스 받고 긴장한 상태로 팀플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지나고 돌아보면 굳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했었나 싶지만, 그땐 진짜 언어에 대한 압박감도 엄청 컸어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팀메이트의 레프레젠테이션과 그래픽, 그리고 디자인 프로세스가 그동안 한국에서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이어서, 오히려 팀메이트를 보면서 정말 많이 배우기도 했다. 예전에 학부 때 교수님께서 한국학생들은 항상 똑같은 것만 보고 따라해서 팔레트도 다들 비슷비슷하고 프로젝트도 다 비슷해보인다고 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사실 나 자신만해도 gsd 오기 전과 후에 팔레트가 완전히 바뀌었으니, 정말 알게모르게 주변 환경에서 받는 영향이 크긴 큰가보다.
첫 프로젝트가 끝난 후 교수들이 학생들과 그동안의 커리큘럼에 대한 짧은 피드백 세션을 가졌다. 대부분 학생들의 피드백들이 스케줄이 너무 빡세다는 푸념 섞인 불평이었지만, 교수들은 '작년에는 더 빡셌는데 너네 많이 편해진거다.'라는 마치 조선인 같은 답변을 남기며 별다른 변화없이 그냥저냥 지나가게 되었다. 그래도 한가지 새로 바뀐 점이 있었는데, 바로 두번째 프로젝트의 팀메이트를 직접 정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고, 그 순간부터 바로 반 애들끼리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쉽게도 학기 시작부터 계속 같이 팀플하고 싶었던 일본인 친구에게 우물쭈물하면서 물어보지도 못하다가...나한테 먼저 같이 하자고 한 중국 친구와 어쩌다보니 같이 팀플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일본 친구도 원래 나랑 같이 하고 싶었다는 말을 듣고 내 짝사랑의 끝은 역시 비극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곧바로 시작한 두번째 프로젝트 역시 보스턴의 남쪽 교외 지역에 마스터플랜을 하는 프로젝트였다. 사이트는 20세기에 성행했다가 지금은 쇠퇴한 미 동부의 테크밸리라는 나름의 고유한 특징이 있었지만 이 역시 미국미국한 컨텍스트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나에겐 그닥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물론 테크밸리라는 컨텍스트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어서 테크 오피스와 주거가 혼합된 캠퍼스를 디자인하게 되었다. 약간 oma의 라빌레뜨 같이 이론적인 상상을 조금 곁들인 마스터플랜이었는데, 지루하긴 하지만 나름 적당히 아카데믹하고 적당히 practical한 결과물이 나왔다. 특히 마스터플랜에서 주거와 오피스 건물, 오픈 스페이스들의 스케일에 대한 감각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스튜디오에서 한 학기 동안 했던 두 프로젝트 모두 시간도 부족했고 사이트 컨텍스트도 그저그래서 아카데믹한 argument를 펼치기엔 좀 애매했지만, 그래도 가장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urban design 프로세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작은 건축 디테일에 신경 쓰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리면서, 큰 스케일을 다루는 법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오랜만에 디테일이나 구조는 생각안하고 인셉션 마냥 매싱을 마구 찍어내면서 행복 설계를 했다..) 사실 urban designer가 가져야 할 필수적인 능력 중에 하나가 큰 스케일을 작게 쪼갤 수 있는 디자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두 개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크고 작은 스케일에 대한 감각의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