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봐도 참 이쁜 울워스 빌딩을 올라가 샾에 딱 들어가서 느낀 첫 인상은, 회사가 정말 넓고 쾌적하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꽤나 많은 회사들에 놀러가봤지만 그런 분위기는 big 이후에 처음이었다. 건물의 10층과 11층을 둘다 써서 내부가 엄청 넓게 느껴졌는데, 특히 그때만해도 샾은 재택근무가 완전히 자유로울 때여서 회사에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다 (호시절…🥺). 인터뷰엔 (나 때문에 굳이 회사에 출근한 것 같아 보이는) associate principal 한 명과 시니어 한 명이 들어왔다. 분위기는 엄청 캐주얼했는데, 그냥 자기소개를 하고 포폴에 있는 프로젝트를 몇 개 내가 골라서 설명하는 전형적인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시작하기도전에 좀 놀랐던건, 내가 말을 꺼내기 전부터 내게 ‘너 줄리아랑 일했지?’ 라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이미 내가 예전에 big에서 인턴을 할 때 줄리아랑 일했다는걸 알고 있었다는 것…😳 알고보니 인터뷰를 봤던 ap는 big 뉴욕의 완전 초창기 멤버였다. 말하는걸 들어보니 줄리아랑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인터뷰에 들어온 다른 시니어는 gsd 졸업생인데다가 네리후에서 일했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또 둘이 린던 얘기도 한참 했다. (역시 사람 일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평소에도 착하게 열심히 사는게 맞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샾에서 내 경력과 포폴을 보고 일부러 그렇게 나와 관련있는 사람들로 인터뷰를 잡아줬나 싶어서, 별건 아니지만 되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포폴이나 프로젝트 얘기는 엄청 캐주얼하게 지나갔고, 오히려 내게 샾에서 뭘 배우고 싶고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냐고 구체적으로 물었다. 난 별 생각없이 그냥 뭐든 다 좋다고 가볍게 대답했는데, 보통 샾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파사드 같이 엄청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오는데 의외의 대답이라며 좀 신기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준비가 안된 지원자처럼 보였을텐데... 게다가 난 패기있게 ‘나는 졸업하고 놀아야돼서 9월부터 일 시작할꺼다’ 라고 반 쯤 정신 나간 말을 했었는데, 그것도 샾은 totally understandable이라며 모든 걸 이해해주는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인터뷰가 끝났고, 다음날 팔로우업 이메일을 보냈을 때도 엄청 친절하게 답장이 와서 점점 샾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인사하면서 ap가 아마 두번째 인터뷰 없이 곧 hr에서 연락이 갈꺼라길래, 곧 오퍼가 오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바로 유럽 가는 비행기표와 한국 가는 비행기표도 사고 여유 넘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hr에서 온 이메일은, 오퍼가 아니라 두번째 인터뷰를 보자는 연락이었다. 살짝 빈정이 상해서 이번엔 그냥 보스턴에서 줌으로 보겠다고 하고 바로 다음날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두번째 인터뷰는 첫번째보다 훨씬 진지했고 포폴 속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이번엔 ap 두 명과 보게 되었는데,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마다 질문도 많았고 질문의 내용들도 수준이 높았다. 특히 네리후 프로젝트를 설명할 땐, 정말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질문을 받았다. ap 중 한 명이 ‘너가 urban design을 할 때나 도시에 대해 접근할 때 어떤 부분에서 특히 건축과 다르게 접근 하는가. 그리고 너가 보여준 urban design 프로젝트에서 건물들의 밀도와 배치 등등은 무슨 기준으로 너가 define하고 디자인했는가’ 라고 내게 물었다.
1년전 네리앤후 파이널 리뷰 때 나디르가 내게 했던 질문과 정확히 같은 질문이었다. 솔직히 좀 놀랐다. 질문을 들으면서 속으로 ‘아, 이 사람들은 프로젝트의 본질을 꿰뚫어볼 줄 알고 argument를 읽어낼 줄 아는구나.’ 생각했다. 뭔가 내게 샾은 완전 practice의 최전선에 있는 회사처럼 느껴졌었는데, 아카데미아의 끝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핵심을 읽어낼 수 있는 걸 보고, 전혀 예상 못한 반전매력이 느껴졌달까...? 오히려 포폴을 보면서 디자인이나 레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질문은 전혀 없었다. 그것보단 내가 가진 철학과 쪼가 궁금했던거다. 그리고 솔직히 난 저 질문을 듣자마자 바로 샾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이미 학교다닐 때 한번 같은 질문을 받아봐서 나름 여유가 생긴건지, 좀 너스레를 떨면서 ‘사실 학교에서 발표할 때도 같은 질문을 받았었다. 그땐 intuition이라고 대답했는데 교수들이 wrong answer이라고 그랬다.. 근데 난 지금도 답을 모르겠다. 난 모른다’ 라고 대답했다.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었을텐데 다행히 ap 둘 다 빵터져서 정답도 오답도 없는 질문인데 그냥 네 스탠스가 궁금해서 물어봤다며, 인터뷰가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나는 며칠 후 바로 유럽으로 떠났다. 오퍼도 안받은 상태로 미국을 떠나는게 상당히 위험한 짓이지만 그땐 놀아야돼서 뭐 뵈는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유럽에서, 한국에서 신나게 놀러다니던 와중에 오퍼가 왔다. 마냥 신났다기보다 그때부터 머리가 좀 아파지기 시작했다. 당장 문제는 아직도 결과가 안나온 oma였고, oma는 이메일로 진행상황을 물어볼때마다 계속 아직 프로세싱 중이라는 앵무새 같은 대답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당장 샾 오퍼를 수락할지말지 일주일 안에 확답을 줬어야 했어서 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들 중 뉴욕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지금 뉴욕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선배들, 교수님들을 다 긁어모아서 의견을 구했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 샾과 oma 둘다에서 일해보았었던 사람에게도 무작정 연락해서 의견을 물어봤다.
그리고 놀랐던 사실은, 내가 물어봤던 5명이 전부 다 고민없이 샾을 제일 추천했다는 사실이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각자 다른 이유들이 조금씩은 있었지만, 대체로 괜찮은 프로젝트 퀄리티 + 워라밸을 샾의 장점으로 뽑았다. 샾은 어느정도 재밌는 디자인과 괜찮은 디자인의 프로젝트를 하는 회사들 중에, 그래도 좋은 워라밸과 회사분위기를 유지하는 몇 안되는 회사라는 것이었다(+스노헤타) 뭐 지금와서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특히 뉴욕을 경험해 본 사람들의 말이라 더 설득력있게 와닿았고, 뉴욕에서의 샾의 위상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높다라는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경험과 증언을 직접 들으니까 맘이 점점 샾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샾스라이팅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게다가 마침 한국에서 신나게 놀다보니까 인터뷰를 또 보기도 귀찮아서, 다른 회사들 인터뷰 요청은 그냥 못가게 됐다고 하고 덜컥 오퍼에 사인해버렸다. 그리고 8월, 드디어 뉴욕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