샾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회사가 신입들에게 기회를 정말 많이 주고 적극적으로 키우려고 한다는 점이다. 회사의 전체적인 시스템과 분위기가 적극적으로 학교 모델을 따르고 있어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것처럼 신입에게 기회를 주는 것에 굉장히 열려있고 진심이다. 그러다보니 회사가 상당히 수평적이고, 주니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회사에 참 잘 조성되어있다. 첫 커리어를 시작하고 무언가를 배워야하는 신입의 입장에서 보면 첫 직장으로는 정말 완벽한, 최고의 회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샾에 오고 처음 들어간 팀은 나까지 총 다섯 명이었는데, 나와 비슷한 때에 샾에 들어온 세 명의 주니어가 각각의 디자인 옵션을 발전시켜야 했다. 그리고 매 주 두번씩 파트너 미팅을 할 때마다 직접 각자 디벨롭한 옵션을 파트너들에게 발표해야 했다. 파트너 미팅 전에 시니어들이랑 따로 얘기하면서 옵션을 디벨롭시키기도 했지만, 시니어들 리뷰 없이 곧바로 내가 파트너에게 발표할 때도 많았다. 정말 말 그대로 학교 스튜디오처럼, 주니어들이 각자 옵션에 대한 내러티브와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서 발표하고 크리틱을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가지 옵션을 그대로 클라이언트 미팅 때까지 가져갔다. 어떻게 보면 정말 내 디자인이 그대로 지어질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열려있는 셈이다.
파트너들에게 디자인을 설명했을 때도 파트너들이 웬만하면 (교수님들처럼) 다 주니어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분위기였다. 파트너 피드백들의 주 focus도 디자인 자체보다는 오히려 내러티브와 옵션들의 차별성, 그리고 각각의 옵션들이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어필이 될 수 있는지에 가까웠다. 예를 들면 ‘이 슬라이드는 클라이언트에겐 너무 디테일하다거나 테크니컬하니까 빼자’ 같은 코멘트들? 약간 자기들이 생각했을 때 ‘아, 이 디자인 옵션은 클라이언트한테 이런식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팔 수 있겠다).’ 가 납득이 되면 딱히 별 디자인 크리틱 없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물론 디자인의 방향성에 대한 스케치나 플랜 레이아웃, 자기들이 원하는 형태에 대한 코멘트도 꽤 있긴 했지만, 내가 느꼈던 파트너 미팅의 주된 분위기는 그랬다.
단순히 디자인에 대한 의견 뿐만 아니라 컨설턴트 미팅과 클라이언트 미팅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샾에는 신입들이 외부 미팅에서도 직접 발표를 하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물론 컨설턴트 coordination은 아직까지도 정말 어려운 영역이지만, 회사에서도 주니어들에게 이건 안해봤으니 모르는게 당연하다며 자신있게 하라고 응원해주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나는 입사한지 한 달 정도 밖에 안됐을 때 바로 사이트 출장까지 데려갔으니까… 그것도 근처 미국 도시가 아닌 조지아 공화국으로, 파트너들+시니어들과 같이 클라이언트 미팅을 위해 날아가게 되었다. 처음엔 나를 뭘 믿고, 그리고 내가 뭘 안다고 날 데려가는거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인도 출장까지 날 데려간걸보면 정말 샾은 신입에게 거리낌없이 기회를 퍼주는 회사구나 싶었다.
사실 이런 수평적인 분위기는 예전에 일했던 big이나 mvrdv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분위기였다. 유럽회사들이라 더욱 수직적인 위계가 강했던 것도 있겠지만, 그 땐 심지어 팀 내부 미팅에서조차도 신입이나 인턴은 의견을 내기가 어려웠다. big에서는 비야케와 미팅을 하면 주로 파트너와 pm이, 그리고 파트너미팅을 하면 pm과 시니어만 말하는 분위기였다. 당연히 클라이언트 미팅에서 말하는 사람은 거의 파트너와 pm 정도밖에 없었다. 특히 인디자인이나 프레젠테이션은 시니어가 아니면 건드릴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디자인 프로세스 역시 이런 수직적인 분위기가 강했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스케치와 아이디어를 밑에서 모델링하고 만들어서 보여주는게 대부분의 디자인 프로세스였다. (mvrdv는 위니마스가 유일신이자 황제였으니까 뭐 말할 것도 없고..🌞)
전에 경험했던 회사의 분위기가 이랬다보니 솔직히 처음 샾에 들어왔을 때 좀 놀랐다. 나의 첫 미국회사다보니까 다른 미국 회사의 분위기도 샾과 비슷한건지, 아니면 샾이 특이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샾은 아무래도 파트너들과 시니어들이 컬럼비아, 예일, 코넬 등등 여러 학교에서 계속 티칭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어서, 수평적이고 학교 같은 분위기를 일부러 유도하려는 듯 하긴 했다 (샾이 gsd에서만 렉쳐 한번 말고는 안왔던걸보면 유독 gsd와만 딱히 인연이 없었던 듯 하다). 심지어 내가 처음 들어간 팀의 pm도 계속 프랫에서 티칭을 해오고 있으니까, 선생님처럼 모르는걸 잘 가르쳐주기도 하고 학생들(신입)을 대하는 법을 잘 알고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