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프로젝트를 온라인으로 끝낸 후, 곧바로 린던이 보스턴으로 날아왔다. 아마 매 학기마다 늘 하는 얘기겠지만, 이번 스튜디오처럼 걱정이 되는 스튜디오는 처음이라며 자기가 직접 얼굴보고 파이널까지 푸쉬를 해야 될 것 같아서 최대한 빨리 왔다고 했다. 린던은 보스턴에 도착한 첫 날 부터 저녁 9시에 건드로 찾아와 애들을 다 불러모으더니, deliverables를 쭉 읊어주면서 바로 잔소리를 하며 애들을 쉴새없이 쪼아대기 시작했다. 워낙 우리 스튜디오에 이미 설계를 던진 애들이 많았기도 했고, 한 달 조금 넘게 남은 상황에서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하는게 꽤나 타이트한 스케쥴이기도 했으니까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린던은 자기 스튜디오의 체면과 남들의 시선을 매우매우 신경쓰는 사람이라, 마지막에 애매하게 결과물이 나올까봐 학기내내 엄청 불안해했다. 로자나는 별 신경 안쓰는듯 했지만 gsd 졸업생인데다가 웬만한 학교 교수들이랑 다 친구인 린던이 특히 그랬던 듯 하다. gsd에서 final week은 거의 쇼케이스처럼 스튜디오 교수들끼리 알게모르게 약간의 경쟁도 붙기 때문에, 나중에 파이널이 가까워지니 애들한테 앞에 두 프로젝트는 그냥 언급만 대충 하고 지나가고, 프레젠테이션과 모델 등등 모든 시간과 노력을 마지막 프로젝트에 올인하라고 했다. 그렇게 한 학기의 피날레라고 할 수 있는 대망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지막 호텔 프로젝트의 사이트는 pingyao와 dunhuang 라는 중국의 두 고대 도시 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그 중 내가 선택한 사이트는 pingyao였다. 둘 다 중국 서부에 있는 역사적인 오래된 도시인데, 특히 pingyao는 14세기 명나라의 역사 문화 유적이 지금까지 보존되어있는 고대 도시로, 한국으로 치면 경주와 그나마 비슷한 관광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도시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성 안의 주택들과 건물들이 다 예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도 워낙 한국처럼 글로벌한 평가와 시선에 많이 휘둘리기 때문에, 20세기 후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마자 중국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명한 관광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중국 정부가 pingyao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이후 도시 내 건물의 철거와 리모델링뿐만 아니라 신축까지, 도시의 물리적인 개발 전체를 완전히 금지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건물의 보수가 필요해도 무조건 과거의 materiality와 색깔 등을 그대로 고증하는 restoration의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했다. 어떠한 새로운 개발이나 물리적인 변화가 허용되지 않으니 도시 전체가 예전의 형상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되었다. 약간 한국 민속촌의 풍경을 생각하면 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민속촌은 완전한 가짜 세트장이지만...)
내가 사이트에서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한 부분은 이렇게 도시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컨텍스트였다. 또 마침 같은 학기에 들었던 히스토리 클래스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적이 있어서, 프로젝트 argument를 짜는데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리딩이랑 글쓰기 과제도 너무 많았고 애들이 다 지루하다고 싫어했던 수업이었지만, 나한텐 문화재 보존이나 도시 재생 등 당연히 좋은 일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알려주었던 재밌는 수업이었다. 특히 수업 내용 중에 유네스코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주제가 있었는데, 유네스코 제도 자체가 유럽의 열강 국가들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고, 전세계 문화재의 authenticity와 중요도를 오직 유럽 소수 엘리트들의 시선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된 여러 아시아의 도시들은 마을 전체가 박물관처럼 박제되어 지역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마비시키고, 그 결과 그 마을엔 관광 산업만을 위한 연출된 삶만 남게 된다. 그렇다면 이게 과연 역사 보존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유네스코라는 제도의 이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