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ri&hu + gsd (3)

2022.01 | cambridge

두번째 프로젝트를 온라인으로 끝낸 후, 곧바로 린던이 보스턴으로 날아왔다. 아마 매 학기마다 늘 하는 얘기겠지만, 이번 스튜디오처럼 걱정이 되는 스튜디오는 처음이라며 자기가 직접 얼굴보고 파이널까지 푸쉬를 해야 될 것 같아서 최대한 빨리 왔다고 했다. 린던은 보스턴에 도착한 첫 날 부터 저녁 9시에 건드로 찾아와 애들을 다 불러모으더니, deliverables를 쭉 읊어주면서 바로 잔소리를 하며 애들을 쉴새없이 쪼아대기 시작했다. 워낙 우리 스튜디오에 이미 설계를 던진 애들이 많았기도 했고, 한 달 조금 넘게 남은 상황에서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하는게 꽤나 타이트한 스케쥴이기도 했으니까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린던은 자기 스튜디오의 체면과 남들의 시선을 매우매우 신경쓰는 사람이라, 마지막에 애매하게 결과물이 나올까봐 학기내내 엄청 불안해했다. 로자나는 별 신경 안쓰는듯 했지만 gsd 졸업생인데다가 웬만한 학교 교수들이랑 다 친구인 린던이 특히 그랬던 듯 하다. gsd에서 final week은 거의 쇼케이스처럼 스튜디오 교수들끼리 알게모르게 약간의 경쟁도 붙기 때문에, 나중에 파이널이 가까워지니 애들한테 앞에 두 프로젝트는 그냥 언급만 대충 하고 지나가고, 프레젠테이션과 모델 등등 모든 시간과 노력을 마지막 프로젝트에 올인하라고 했다. 그렇게 한 학기의 피날레라고 할 수 있는 대망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지막 호텔 프로젝트의 사이트는 pingyao와 dunhuang 라는 중국의 두 고대 도시 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그 중 내가 선택한 사이트는 pingyao였다. 둘 다 중국 서부에 있는 역사적인 오래된 도시인데, 특히 pingyao는 14세기 명나라의 역사 문화 유적이 지금까지 보존되어있는 고대 도시로, 한국으로 치면 경주와 그나마 비슷한 관광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도시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성 안의 주택들과 건물들이 다 예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도 워낙 한국처럼 글로벌한 평가와 시선에 많이 휘둘리기 때문에, 20세기 후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마자 중국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명한 관광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중국 정부가 pingyao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이후 도시 내 건물의 철거와 리모델링뿐만 아니라 신축까지, 도시의 물리적인 개발 전체를 완전히 금지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건물의 보수가 필요해도 무조건 과거의 materiality와 색깔 등을 그대로 고증하는 restoration의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했다. 어떠한 새로운 개발이나 물리적인 변화가 허용되지 않으니 도시 전체가 예전의 형상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되었다. 약간 한국 민속촌의 풍경을 생각하면 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민속촌은 완전한 가짜 세트장이지만...)

내가 사이트에서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한 부분은 이렇게 도시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컨텍스트였다. 또 마침 같은 학기에 들었던 히스토리 클래스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적이 있어서, 프로젝트 argument를 짜는데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리딩이랑 글쓰기 과제도 너무 많았고 애들이 다 지루하다고 싫어했던 수업이었지만, 나한텐 문화재 보존이나 도시 재생 등 당연히 좋은 일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알려주었던 재밌는 수업이었다. 특히 수업 내용 중에 유네스코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주제가 있었는데, 유네스코 제도 자체가 유럽의 열강 국가들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고, 전세계 문화재의 authenticity와 중요도를 오직 유럽 소수 엘리트들의 시선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된 여러 아시아의 도시들은 마을 전체가 박물관처럼 박제되어 지역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마비시키고, 그 결과 그 마을엔 관광 산업만을 위한 연출된 삶만 남게 된다. 그렇다면 이게 과연 역사 보존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유네스코라는 제도의 이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운이 좋았던건지 이러한 내용이 마침 스튜디오의 주제인 cultural tourism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얼어버린 pingyao의 현 상황과 깊게 맞닿아있었다. 그래서 상당히 수월하게 논리적이고 탄탄한 내러티브를 짤 수 있었다. 파이널 프레젠테이션 인트로에서 처음 인용했던 quote가 “unesco designation is a kiss of death” 였는데, 이 한 문장이 현재 pingyao에 대한 내 argument의 방향을 가장 효율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pingyao가 맞이하고 있는 tourism의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내러티브를 풀어 나갔다. 네리후도 이런 내러티브를 상당히 맘에 들어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린던의 gsd thesis 주제가 나랑 상당히 비슷한, 마을의 museumification였다고 한다. 자기가 워낙 익숙한 주제고 좋아하는 분야라 적극적으로 크리틱도 해주고 레퍼런스도 찾아주고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나의 기본적인 thesis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이유 때문에 도시가 성곽 안에 갇힌 채 과거에 머무르며 주민들의 삶을 억제해서는 안되고, tourism을 좀 더 도시가 성장할 수 있는 건설적이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처럼 관광객들에게 도시를 전시하기만을 위해서, 지금처럼 pingyao가 과거의 건축 및 생활 양식을 절대적으로 보존하고 주민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이 관광객들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기를 상상했다. 그래서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주민들의 주거시설이 한 건물에 합쳐져 hybrid된 새로운 타이폴로지의 호텔을 제안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관광객들이 연출된 이미지만 접하지 않고 도시의 일상 속으로 직접 깊게 들어가서, 진정한 지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tourism을 경험하길 바랬다.

건축적으로는 과거 전통적인 pingyao 건축의 주 재료라고 할 수 있는 벽돌 및 석재의 solid한 느낌과 대비되는, 가벼운 슬레이트 지붕과 나무 구조를 사용해서 lightness와 transparency를 극대화 시키고자했다. 프로젝트 사이트인 성벽 바로 앞의 땅에 비슷한 language와 gesture을 공유하는 총 다섯 동의 건물을 디자인 했는데, 형태는 다 다르지만 모든 건물들이 호텔과 주거를 포함하고 있으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hybrid 되어 있는 디자인이었다. 아마 내가 이제까지 들었던 스튜디오 중에서, 가장 건축적인 디자인에 시간과 공을 많이 들였던 것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특히 박공 지붕은 이제까지 살면서 한번도 안해본 디자인이었는데, 린던이 하도 깐깐하게 굴어서 괜찮은 비례를 찾느라 꽤나 고생했다. 조금만 비례가 어긋나면 스위스나 다른 유럽건축같다고 까이거나 아니면 너무 일본건축 같다고 까이고…그래도 내 취향이 워낙 한결같은 일뽕이라 그건 어쩔 수 없었는지 결국 상당히 일본건축같은 디자인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린던도 크리틱 때 만약 자기 회사 프로젝트였으면 이렇게 가볍게 안하고 중국건축과 pingyao에 어울리는 무거운 재료와 느낌으로 했겠지만, 이건 내 프로젝트니까 자기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겠다며 순순히 넘어갔다.

파이널 리뷰가 가까워오면서 네리후는 연휴와 휴일에도 계속 수업을 했고(…) 데스크크리틱에서는 주로 프레젠테이션과 모형에 대해서만 다루게 되었다. 그렇게 내러티브를 계속 다듬으며 어느덧 12월이 됐을 무렵, 리뷰가 일주일도 안남은 시점에, 갑자기 린던이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방향과 결론을 urbanism으로 가는게 어떻게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이 프로젝트가 절대절대 urban design 프로젝트가 안됐으면 좋겠다고 반박했다. 아마 그때가 내가 학기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리후 말에 강하게 반발하며 argue 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발작하며 반발했던 이유 중 하나는, urbanism 프로젝트가 되는 순간 프로젝트에서 건물의 건축적인 디자인은 거의 중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urban design과 architecture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urban design 프로젝트에서 건물의 디자인은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서포트하기 위한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건 특히 마스터플랜에서 urban designer는 전체적인 큰 시나리오와 framework만 상상하고 디테일한 디자인은 이후에 건축가가 완성한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2년동안 학교와 회사에서 이런 시나리오 짜는 일만 주구장창해서 마스터플랜 자체가 좀 질렸던 나는, 애초에 학기 시작 전 부터 절대 학교에서 urban design 프로젝트를 더 이상 할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로터리 때도 건축건축한 스튜디오들로만 신청했었다.

진짜 오랜만에 제대로 된 건축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서 학기 중에도 절대 내러티브나 프로젝트 방향을 urbanism으로 하지 않으려고, 이번엔 평소엔 크게 관심이 없었던 materiality나 비례에도 신경을 꽤나 많이 써가면서 디자인을 했는데, 또 돌고돌아 urbanism이라니😭 역시 아무리 도망가려해도 maud 뿌리를 숨길 수는 없던건지, 내 스스로가 알게 모르게 디자인을 할 때 그런 urban 색깔이 계속 묻어 나오는건지 모르겠지만… 이건 뇌피셜인데 네리후가 어쩌면 스튜디오 결과물의 다양성을 위해서 나를 urbanism으로 몰아가려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반에서 한명 쯤은 다르게 하는 애 있어야 되니까..🌝

내가 꽤나 강하게 부정적으로 나오자 린던도 내 반응이 의외였는지 다음 수업 때 로자나까지 동원해서 나를 또 설득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자나도 이 프로젝트 내러티브는 urban design이 맞는 것 같다며 나보고 네 전공을 최대한 활용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네리후의 제안은 호텔/주거가 hybrid된 건축 타이폴로지가 pingyao가 tourism을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그 결과 도시가 성벽 밖으로 점점 확장되는 단계적 urbanism 시나리오였다.

내가 나는 이번 파이널 리뷰에서는 정말 건축에 대한 discussion만 하고 싶다, urbanism으로 발표하면 내가 디자인 한 호텔의 건축적인 중요도와 힘이 확 떨어지는게 아니냐고 반문하자, 네리후는 프로젝트 방향을 바꾸거나 뒤집으라는게 아니라 그냥 내러티브의 마무리를 도시적인 스케일에서 끝내면 되는 것 뿐이라며 incremental 다이어그램 하나만 넣으면 될꺼라고 했다.

그렇게 급조해서 넣은 incremental diagram

현실부정을 하려 했지만 내가 듣기에도 그 내러티브가 설득력이 있어보이긴 했고 또 훨씬 프로젝트가 단단해보여서 부들부들하며 인정했다. 또 네리후를 말싸움으로 도저히 이길 수 가 없어서 매우 손쉽게 설득당해버렸다. 그리고 phasing이나 incremental urbanism은 워낙 내가 익숙하고 편한 내러티브니까 어떻게 프레젠테이션 구성을 짜면 되는지 바로 그림이 그려져서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했고… 그렇게 하루만에 다이어그램을 하나 뚝딱 만들어서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 부분에 넣었고, 곧 대망의 파이널 리뷰 날이 다가왔다.

gsd의 파이널 리뷰는 학생보다 스튜디오 교수들이 더 신경쓰는 날이기 때문에, 리뷰의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교수들에 의해 컨트롤된다. 특히 보통 발표 포맷과 학생들 발표 순서정도까지는 완전히 교수들에 의해 섬세하게 큐레이팅 되곤 한다. 그 중에서 발표 순서는 리뷰 분위기를 미리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데, 일반적으로 1부 마지막과 2부 처음, 2부 마지막이 가장 그 학기 스튜디오에서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인 경우가 많고, 특히 가장 마지막 순서는 리뷰의 피날레 같은 느낌이라 제일 주목 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워낙 예전부터 파이널 리뷰를 과하게 신경쓰던 린던은 정말 이걸 한 일주일 넘게 고민하는 듯 했다. 게다가 우리 스튜디오는 사이트가 2개였어서 각 사이트의 프로젝트들을 오전 오후에 반반으로 나누느라 머리가 상당히 아파보였다. 그리고 우리 스튜디오는 리뷰 전날 자정이 가까이 돼서야 드디어 최종 발표 순서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pingyao 사이트 프로젝트 중에서는 마지막, 전체에서는 마지막에서 두번째 순서였다. 

파이널 리뷰 게스트 크리틱 명단도 계속 공개를 안하고 질질 끌다가 전날에야 확정이 되었는데, 몇몇은 in person으로 오고 몇몇은 줌으로 하는 하이브리드 리뷰를 하게 되었다. 진짜인진 모르겠지만 린던은 리뷰 초대로 이시가미랑 쿠마한테도 물어보고 모네오랑 올지아티한테도 연락했다고 했다. (사실 약간 허언 같긴한데 네리후도 스타아키텍트고 워낙 인싸라서 진짜일 수도… ) 근데 이시가미는 시간 상 프로젝트를 2개 밖에 못본다고 했고, 쿠마는 줌으로는 절대 안하겠다고 했다는데 gsd의 covid policy 때문에 외부 크리틱은 in person으로 올 수가 없었어서 다 못불렀단다🥺

그래도 gsd와 네리후 명성에 알맞게 20명정도의 꽤나 쟁쟁한 사람들이 리뷰어로 오게 되었는데, 고마웠던 점은 네리후가 최대한 학생들 각각의 프로젝트 스타일에 맞는 게스트 크리틱들을 따로 맞춰주기 위해 발표 순서와 리뷰어들의 시간표를 완전 세세하게 맞춰놓았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exit interview 때 네리후와 얘기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내 프로젝트는 꼭 토시코와 미셸, 나디르가 봤어야 했어서 그렇게 의도적으로 배치했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파이널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극비 선발출전명단 같은 발표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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