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ri&hu + gsd (4)

2022.01 | cambridge

대망의 크리틱 날, 해외에 있는 몇몇 게스트크리틱들 때문에 아침 8시부터 리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나는 거의 마지막 순서인데다가 계속 시간이 지체되어 저녁 6시쯤에나 발표를 할 수 있었다. 며칠 째 거의 잠도 못잤고 특히 전날은 밤을 거의 새웠지만, 초조하게 내 순서를 기다리면서 프레젠테이션과 대본을 계속 다시 수정했다. 린던이 절대 전날은 밤새지말고 잠을 자야 리뷰 때 제대로 된 defense와 discussion을 할 수 있다며, 자기도 thesis때 잠을 못자서 리뷰로 왔던 헤르조그와 렘, 시자의 크리틱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서 지금 너무 후회가 된다고 우리에게 신신당부했었는데… 역시나 나도 잠 못잔 좀비 상태로 발표를 하게 되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고 10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세 개의 프로젝트의 발표를 끝냈고, 공포의 40분 q&a 세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미드리뷰 때와 다르게 꽤 밝은 분위기로 리뷰가 진행되었다. laurie hawkinson이 privacy나 몇몇 현실적인 부분을 질문한 것 말고는 대부분 칭찬이 많았는데, 아마 토시코가 내 프로젝트를 너무 좋아해줘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밝게 끌고 간 점이 컸던 것 같다. 리뷰 끝나고 린던이 나한테 토시코가 너무 신나서 내 프로젝트 사진과 영상을 자기 인스타에도 올리고, 옵션스튜디오 교수들 왓츠앱 방이랑 gsd 전체 faculty 그룹에도 포스팅하면서 내 프로젝트 홍보를 다 여기저기에 해줬다며, 토시코에게 고마워하라고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계속 되다가, 마침내 조용히 있던 nadaaa의 nader가 마지막 크리틱을 시작했다.

toshiko and me

나디르가 시작한 이 urbanism에 대한 discussion은 이번 프로젝트와 이번 학기 전체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계속 날카로운 표정으로 듣고만 있던 나디르의 첫 마디는 “나는 이게 urbanism 프로젝트인지 architecture 프로젝트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그에 대한 네 attitude를 알기 전엔 나는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코멘트 할 수 없다” 였다. 그 말을 듣고 바로 뇌정지가 온 나는 횡설수설 하기 시작했고, 나디르는 나한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네가 프레젠테이션에서 보여준 디자인은 주로 sophisticated 된 텍토닉과 렌더링이다. 반면 전체적인 프로젝트의 내러티브와 결론은 urbanism으로 보이는데, 막상 이 건물들이 성벽 밖에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그리고 도시가 퍼져 나가는 구체적인 방식과 urbanism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없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의 urbanism에 대한 네 궁극적인 attitude는 정확히 무엇인가?” … “네 말처럼 만약 도시가 점점 더 성장하고 확장하게 된다면, 지금 네가 보여준 다섯 건물의 배치에서 너는 어떻게 여기에 새로운 공간과 프로그램을 더 추가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너는 어떻게 지금 네가 제안하는 이 건물들의 밀도와 숫자가 도시에서 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가?” 

체크메이트였다. 이 얼마나 프로젝트의 핵심을 제대로 관통하는 질문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디르가 질문하는 포인트는 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도 프레젠테이션에 준비 되지 않은게 사실이었다. urbanism의 내러티브로 발표를 했다면 당연히 어떻게 내가 도시의 발전을 framing 하고 define 하는지에 대한 근거와 논리가 있었어야 했지만, 그런 urbanism을 보여주는 드로잉은 단순히 도시가 퍼져나가는 작은 다이어그램 하나 뿐이었다. 주어진 사이트에서의 배치 전략 또한 단순히 다섯 개의 건물이 흩어진 것 뿐이었고, 이 다섯 동이 어떤 이유로 이런 밀도를 가지고 배치되었다거나, 그 배치가 어떤 방식으로 미래에 확장되게 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 물론 이 배치는 studio brief에서 주어진 사이트와 프로그램 면적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온 outcome이었지만, 그 역시 나디르의 “그럼 더 추가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지을껀데?”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기본적인 부분이고, 당연히 그에 대한 대답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솔직히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대로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부분이기도 했고… 정말 뭐라 답변을 할지 모르겠어서, 말 그대로 머리가 띵해지는 순간이었다.

멍하니 있던 내가 가까스로 한 대답은 “intuition.” 이었다. 내 대답을 듣자마자 린던이 위기를 감지했는지, ‘i’m still thinking about it’이라고 대답했어야 됐다며, kwang이 앞으로 2주동안 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꺼라는 기묘한 쉴드 아닌 쉴드를 쳐줬다. 하지만 이미 폭주기관차가 되어버린 나디르는 이건 2주만에 찾을 수 있는 답이 아니라고,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면서 자신만의 스탠스와 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디르는 이건 궁극적으로는 urbanism에 대한 자신만의 strategic한 attitude가 있어야 대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나디르도 내가 제대로 된 답을 못할 줄 예상하고 있었던건지, 그냥 내 urbanism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서 질문해봤다고 하면서 나중에 혼자 더 생각해보라고했다. 린던도 자기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고 답을 모르겠다며, 나디르와 다음날 점심을 먹으며 그 주제로 더 얘기해보자고 했는데, 그걸 듣고 역시 지식인들의 삶이란 과연 저런거구나 싶어서 좀 멋있다고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학기가 끝나고 혼자 계속 생각을 해본 지금도, 아직 나디르의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모르겠다. 내가 제안하는 도시가 수직적으로 확장되는게 맞는지, 점점 고밀도로 채워지는게 맞는건지, 그리고 그게 어떤 방향이던 그걸 내가 어떤 기준으로 define 하고 또 판단할 것인가. 사실 지금까지 몇년 간 urban design을 쭉 본격적으로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그런 기준에 대해 제대로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항상 urban deisgn은 디자인의 궁극적 목적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생각에 프로젝트에서 나의 주관적 개입을 최대한 지양하려 했었지만, 그 framework조차 결국 자신의 판단의 결과물이니까. 그 판단의 기준에 대한 나만의 확고한 argument와 스탠스가 필요하긴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꼬리를 물던 생각들은 결국 네리후에 대한 나의 비판적인 고찰로 이어졌다. 네리후는 명실상부 스타아키텍트의 반열에 올랐고 아카데미아에서도 확실한 입지를 다진 교육자이지만, 절대 urbanism의 scope로 프로젝트를 바라보고 이해하지는 못했다. 단순히 다이어그램 하나와 스토리텔링으로 urbanism을 논하기엔 디자인 결과물이 너무나도 건축가의 시선 중심이었고, urbanism argument를 위해서 프로젝트에서 어떤 점이 더 필요한지 나한테도 가이드 해주지 못했다. 반면에 urbanist인 (그리고 maud 졸업생인) 나디르의 눈에는 전체적인 내러티브와 디자인 결과물이 서로 결이 안맞는다는게 눈에 바로 띄었고, 그래서 그 부분을 바로 지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건축 재료, 텍토닉, 그리고 지붕 비례 같은 건축적 요소들만 강조하면서 막상 내러티브의 기본이 되는 큰 그림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같은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이런 다른 시선이 architect와 urban designer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네리후에 대한 이런 생각도 결국 내가 maud니까 더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네리후에서 일했던 친구가 나한테 ‘네리후는 건축은 잘하지만 urban design은 별로 못한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정말 네리후에게 많이 배운 만큼 네리후의 한계도 느낄 수 있었던, 스스로 시야도 넓어지고 머리도 커진 학기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항상 스튜디오에서 교수들의 말에 설득 당하고 끌려다니며 프로젝트를 했었고, 뼛속까지 태생이 조선인이라 아직도 교수들의 의견에 반박하고 싸우는게 가장 어렵지만, 그래도 이젠 교수의 스탠스를 크리틱하고 challenge할 수 있게 된 게 이번 학기 나의 가장 큰 성장이라면 성장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네리후를 말싸움과 논리로 이기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얼굴보고 debate하고 설득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뒤에서는 혼자 이길 수 있게 되었다🌚

학기가 다 마무리 되고 네리후와 exit interview를 할 때, 내가 이 부분을 살짝 언급하면서 수업에서 약간 아쉬웠던 부분이었던 것처럼 지나가듯이 말을 꺼냈다. 하지만 어른인 네리후는, “우린 일부러 너가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의(urban design이 아닌) 건축과 디자인을 하는 걸 푸쉬했다. 그리고 너가 그걸 이겨내고 점점 배우면서 성장하는 걸 볼 수 있어서, 우린 너가 너무 자랑스러웠는걸” 라는 극대인배 같은 대답을 해서 나를 다시 작아지게 만들었다..😩 역시는 역시 역시랄까… 그러고는 나중에 졸업하면 상하이에서 일해보는건 어떠나며, 상하이와 자기 회사 자랑을 하면서 그렇게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잡오퍼를 주고 훈훈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한달 후, 기대도 안한 나에게 네리후는 디스팅션을 주었고, 네리후는 곧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 중 하나가 되었다🙂

참 마지막까지 좋은 기억만 남기고 떠난 절대 못 잊을꺼 같은 좋은 사람들이라, 이런 좋은 스튜디오를 들을 기회가 있었던 것에 너무나도 감사한 학기였다. 그리고 네리후도 앞으로 정말 더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워낙 사무소 포지셔닝을 잘해놔서, 이대로면 나중에 정말 프리츠커 받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닐꺼 같긴하지만… 말로는 곧 뉴욕 오피스를 열꺼라는데, 조만간 미국에서 꼭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절대 안까먹을테니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하라던, 장난꾸러기 같은 린던의 말이 진심이기를 빌며~ 😌

Previous
Previous

유학 + gsd (1)

Next
Next

neri&hu + gsd (3)